[술] 빠알간 슬픈 두꺼비

afinesword(62)
Published in
#kr
Words
274
Reading
2 min
8y
Listen to this post
~2 min

U5drcAWuvgpuUrTyB6eTpV8dBYG6KsG_1680x8400.jpg

목요일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 마실 술을 사야 할 목요일이다.

소주는 서글프다. 소주는 가격이 저렴하고 비교적 도수가 높다. 소주를 마시면 돈 걱정 없이 빨리 취해 몸과 마음의 고통을 마취할 수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빠알간 두꺼비를 그린 알코올 도수 25도짜리 진로 소주를 서너 병씩 들이부어 고달픔을 잊고, 자고, 다시 일하러 나갔을 것이다. 내 아버지도 그러하셨을까.

군에 있을 때 만난 상사 A는 술자리에서 소주를 물처럼 마셨다. 그는 “요즘 소주는 소주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날 마셨던 소주가 21도였는지, 19도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한참 뒤에야 이른바 빨간 두꺼비, ‘진로 골드’를 대형마트에서 판다는 걸 알았다. 진로 골드는 21도짜리 참이슬 오리지널과는 다른 술이다. 오리지널에 빨간 두꺼비를 새겼다고 혼동하지 마시기 바란다.

술집에서 선배 B는 늘 “소주 히야시한 걸로 주세요”라고 했다. 찬 소주를 달라는 얘기다. 히야시란 일본어의 잔재라는데, 나는 왠지 B의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말해본 적 없다.

B의 철학대로 차갑게 식은 소주, 진로 골드를 깐다. 소주 한 잔 양을 가늠해 위스키 온더락 잔에 따른다. 아 저 익숙한 소주 냄새. 소주 냄새는 소주 냄새인데 조금 더 노골적이다.

물론 원샷이다. 반샷 안 된다. 탁, 목구멍을 열고 잔을 털어 넣었다. 알싸하다. 매콤할 정도로 알싸하다. 알코올이 목젖, 식도, 위장을 씻어내는 것 같다. 절로 캬 소리가 난다. 코에서 뜨거운 기운이 나온다.

묘하게 짜릿하다. 그리고 개운하다. 40도 넘는 술도 잘만 마시는데 왠지 진로 골드가 더 독하게 느껴진다.

진로 골드 베이스의 소폭(소주와 맥주를 섞은 칵테일)은 어떤 맛일까. 카스를 부은 잔에 소주를 탄다. 나만의 황금비율로. 아, 고소하다. 19도, 21도 소주 베이스의 소폭보다 훨씬 맛있다.

문득 소주의 맛을 논하는 게 의미 없게 느껴진다. 누가 소주를 음미한다고. 대형마트에서 진로골드 360㎖ 한 병에 약 1500원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생각날 것 같다.

달라진 것은 없다. 소주의 도수가 낮아졌을 뿐. 우리는 오늘도 싸게 많이 먹고 빨리 취하려고 소주잔을 든다. 그러므로 파란 두꺼비도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20170929_3468127_1506662598.jpg

[술] 빠알간 슬픈 두꺼비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