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브루크너는 꽁한 아재 같아요. 참고 참다가 욱하는 아재요.
왜 있잖아요. 혼자 소심하게 남 들으라고 하는 말도 아닌 것을, 그렇다고 혼잣말도 아닌 것을 구시렁대다가 갑자기
야! 응? 인마! 내가 응? 이 자식아!
이러면서 욱하는 아재요. 나임. 브루크너는 실제 성격도 좀 소심하다고나 할까, 지나치게 신중했다고나 할까. 그랬다고 합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은 사실 좀 지루해요. 중언부언한달까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러다 우르르 쾅쾅 터지는데, 그 터지는 부분이 너무나 웅장하고 멋있습니다.
오늘은 브루크너 8번 교향곡 4악장을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한 곡 통째로 얘기해도 좋겠지만, 전체 4개 악장이 1시간 20분쯤 되는 대곡이다 보니, 1악장부터 듣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4악장만 들고 왔습니다. 4악장만도 20분이 넘습니다. 다른 일을 하시면서 들으셔도 좋겠어요.
아재가 어쩌고 했지만, 사실 브루크너 8번은 음악사에 손꼽히는 위대한 교향곡입니다. 베토벤 9번에 비견될 정도의 작품이에요. 브루크너가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부르크너 교향곡 9번은 미완성입니다. 브루크너는 9번 3악장까지만 완성하고 숨을 거뒀습니다.
음악평론가 최은규는 브루크너 8번 4악장을 일컬어 “마치 멀리서 군대가 돌진해오듯 무시무시하게 시작”한다고 평했습니다. 브루크너 연구가 로버트 심슨은 또 “거대한 느낌이 마치 웅장한 성당 같은 건축물을 연상하게 한다”고 말했고요. 과연 도입부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시커먼 해일이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8번 4악장에서 브루크너는 중언부언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4악장을 들으면서 저는 지루할 틈 없이 없었습니다. 이후 곡의 분위기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종잡을 수 없이 변합니다. 온화했다가 다시 팀파니가 쿵쾅댔다가 서정적이었다가 금관이 볼륨을 키우는 식입니다. 피날레의 종반은 압권입니다. 장엄함과 비통함을 오가다가 최후의 승리로 끝맺습니다.
여러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다크나이트’ 보셨나요. 왜 다크나이트 끝날 때 즈음 배트맨이 개에 쫓겨 지하 통로로 사라지잖아요. 저는 왠지 8번 4악장 끝 무렵 오케스트라가 피치를 올릴 때 그 영상을 떠오릴게 돼요. 끝내 팡파레가 울릴 때에는 모든 시련을 이기고 고층 빌딩 꼭대기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배트맨을 그립니다. 이상한 노릇입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원래는 매주 화요일에 [음악]을 씁니다. 월, 수요일에는 [차못쓴], 목요일에는 [술], 금요일에는 [운동]을 쓰고요. 지난주 본의 아니게 김정은 특집 차못쓴을 월요일, 화요일에 연달아 썼어요. 그러느라 [음악]을 한 주 건너 뛰었습니다. 2주일 내내, 잠깐 나얼 신보를 들은 걸 빼면 8번 4악장만 주야장천 들었네요. 귀에서 고름이 나올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러 지휘자의 8번 4악장 중에서 앨범 세 장을 골랐습니다. 리뷰 보시고 마음 가는 대로 들으셔도 다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휘 귄터 반트 연주 베를린 필하모닉 녹음연도 2001
브루크너 스페셜리스트 귄터 반트의 역작입니다.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음질도 좋아요.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 음반을 듣노라면, 반트가 마치 신의 계시에 따라 지휘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어요. 그만큼 종교적인 느낌을 준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에누리없는 비브라토, 단호한 맺고 끊음이 주는 인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레퍼런스’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연주입니다.
지휘 피에르 불레즈 연주 빈 필하모닉 녹음연도 1996
냉정하면서도 구조적으로 단단한 연주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8번 4악장이기도 합니다. 현대적이랄까요. 20년도 더 된 녹음인데. 감각이 조금도 후지지 않습니다. 모노럴 시대를 풍미한 한스 크나퍼츠부쉬 앨범과 번갈아 들어도 재미있겠습니다. 에누리 없이, 자로 잰 듯 연주하는데 그게 참 좋아요. 절묘하달까. 특히 피날레의 완벽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레즈의 부르크너라니.
지휘 세르쥬 첼리비다케 연주 뮌헨 필하모닉 녹음연도 1993
첼리비다케 이 고집불통 늙은이. 그는 8번 4악장을 32분 동안 연주했습니다. 그는 늘 그렇듯 극단적으로 느린 템포를 고수합니다. 영웅 장송행진곡, 비창에서 그의 해석은 발군이지요. 하지만 8번 4악장에서는 글쎄요. 제게는 설득력이 떨어져요. 하지만 이 녹음을 최고로 치는 애호가가 적지 않습니다. 이 앨범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주적’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집중하기 조금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