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야, OO는 커서 뭐 되고 싶어?” 내가 물었다.
내 배 위에 앉은 채, 큰놈이 말했다. “기주”
나는 다시 물었다. “기주...? 기주가 뭔데? 기자? 너 기자 되고 싶어?”
아들이 말했다. “응. 기자”
내가 재차 물었다. “너 기자가 뭐 하는 건지 알아?”
아들이 답했다. “똥꾸” 그리고는 씩 웃었다. 왼쪽 볼에 보조개가 파였다.
너무 예뻐서 아들을 안고 뽀뽀했다. 아들은 몸을 빼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처럼 출근하는 게 기자야”
그렇다. 이제 갓 네 살 먹은 놈이 무얼 알겠는가. 그저 아침마다 “회사 다녀올게” 하고 나가는 아빠가, 나가서 뭔가 되게 재미있는 걸 하고 온다고 생각하겠지.
큰놈은 돌잡이 때 망치를 잡았다. 나는 기뻐서 크게 웃었다. 녀석은 그 망치로 웃는 아비를 매우 쳤다. 작은놈은 아직 돌이 안 됐다. 작은놈은 무엇을 잡을 것인가. 법관이 있으니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우리 부부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놈들은 커서 무엇을 해 밥을 먹고 살 것인가. 또 어떻게 제 가정을 꾸려나갈 것인가. 나는 아들들이 기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것은 고되고, 그 고됨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언젠가 둘 중 하나가, 제 아비와 어미를 따라 꼭 기자를 하겠다고 나선다면야 말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은 조금 대견해 할 것 같다. 꼴에 내 직업에 대한 터럭만 한 자부심이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다.
놈들이 한 명의 사내로서 제 몫을 다하기를 바란다. 또 생육하고 번성하기를 바란다. 녀석들을 바른 사내로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한 20년간 내가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부터 똑바로 살아야 한다.
아들들이 대단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아들이 판사나 검사, 의사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되면야 자랑스럽기야 하겠지마는. 남을 해코지하지 않고 해코지 당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녀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만 녀석들의 의식주를 책임일 생각이다. 나도 그렇게 컸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부터는 스스로 내 앞가림을 했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들 도와드렸다.
내 아버지와 달리, 나는 내 아들들의 도움을 안 받고 싶다. 늙어서 죽을 때까지 내 힘으로 나와 내 아내의 끼니를 책임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꿈은 내 아들들이 내 등판을 보면서 “어휴 저놈의 늙은이는 늙지도 않네” 말하게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