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나갔다, 회사로. 둘째를 낳고 일년쯤 육아휴직했던 아내가 복직했다. 아내가 집에 있어서 나는 좋았다. 다 좋지는 않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아들들은 엄마를 좋아했다.
나는 시한부 외벌이 가장이었다. 지난해 말과 올해 내 목표는 ‘존버’였다. 몇 번 위기가 있었다. 때마다 거짓말처럼 통장은 채워졌다. 어찌저찌해서 아내 복직 때까지 버텨냈다. 나새끼야 장하다.
복직을 앞둔 아내는 예민했다. 아내는 머리를 새로 했고 화장품과 옷을 몇 벌 샀다. 나는 집에서 고생한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짱구를 좀 굴리다가, 접었다. 남세스러워서.
대신 선물을 했다. 귀걸이를 사주려고 했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 나는 귀걸이를 많이 사줬었다. 아내는 그걸 죄다 잃어버렸다. 선물로 몇개를 골라놨는데, 역시 접었다. 아내가 지갑 얘기를 해서.
아내는 핸드폰이 들어가는 지갑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돌려 말했다. 여성들은 지갑에 휴대폰까지 넣는 모양이구나. 백화점 매장 직원에게 “핸드폰 들어가는 지갑 주세요”라고 말했다.
직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해... 핸드폰이요?”라고 그가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가 그런 지갑은 없다고 혹시 클러치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 브랜드에서 제일 큰 지갑을 샀다.
이 일화를 아내에게 말해주었다. 아내가 크게 웃었다. 아내는 “보통은 클러치를 들지”라고 했다. 아내는 아이폰을 쓴다. 아내의 아이폰이 지갑 안쪽에 겨우 들어갔다.
나는 이튿날 술 약속이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술자리라 감을 잃었던 모양이다. 오후 11시에 술자리에서 일어났어야 했다. 나는 자정쯤 일어났다. 집에 들어가니 오전 1시 30분이었다. 아내는 격노했다.
다음날이 아내의 복직 D-1일이었다. 고급 호텔 베이커리에서 초콜릿을 잔뜩 바른 케잌을 샀다. 아내에게 세리모니를 해주고 싶었다. 나는 베이커리 직원에게 “초 큰 걸로 두 개 주세요”라고 말했다.
직원이 동공이 흔들렸다. “네까짓 게 스무살 짜리를 만난다고?”라고 그가 속으로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애가 둘이라 초 두 개다, 인마”라고 답했다.
문 여는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마중 나온 만 4세 큰놈이 케잌을 보고 “오늘 내 생일이야?”라고 했다. 나는 “쉿, 엄마 주려고 샀어. OO도 주려고 샀어. 생일은 아냐”라고 했다.
초를 붙이고 노래를 했다. 내가 “‘OO아 복직 축하 합니다’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큰놈은 복직을 축하한다고 했다가 생일을 축하한다고 했다가, 제멋대로였다. 초도 제가 불어 껐다.
큰놈이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아기 의자에 앉은 작은놈은 시계추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박자를 탔다. 큰놈이 초를 끄려고 일어나자 작은놈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작은 놈을 초를 불 줄은 몰랐다.
아들놈들을 보면서 아내가 웃었다. 아내에게 빵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내가 또 웃었다. 케잌이 맛있다고 아내가 말했다. 너무 달았는지, 큰놈은 케잌 한 조각을 다 먹지 못했다.
아내가 다시 사회로 나왔다. 아내는 아마 여기저기 부딪치고 치일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속이 아프다. 그래도, 아내가 웃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아마 내가 잘 해야 할 것이다.
아들들을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오후 5시면 어린이집에서 하원 했던 아들들은 이제 오후 7시까지 어린이집에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다 그렇게 큰다”고 혼자 되뇌어도 마음이 스산하다.
우리 부부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사내아이 둘을 봐주셔야 할 장모님께도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장모님께 진, 또 질 이 빚을 어떻게 다 갚을 것인가. 이것은 도무지 갚을 도리가 없는 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