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야, 안 돼”라는 말을 내가 너무 많이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큰놈이 자아가 생긴 다음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엄격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엄격했다. 아버지는 나를 회초리, 구둣주걱, 문진으로 때렸고 죽도로도 때렸다. 옛 어른들은 대나무로 아이를 때리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던데 아버지는 그냥 때렸다. 무서웠다. 무서웠지만,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 아버지가 거의 매번 타당한 이유로, 손이 아닌 도구를 써서, 내 종아리만 때렸기 때문일 것이다.
딱 한 번 뺨을 맞았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다. 오른쪽 눈이 번쩍했는데, 그 찰나 아버지의 흰자가 당혹감으로 커지는 걸 봤다. 나는 안방 모서리를 파고들어 앉아 울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있다 나갔다. 두어 시간쯤 지나 내가 평생 본 적이 없는 값비싼 장난감을 사 오셨다. 왜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의 내 세대가 그러하듯, 나는 아버지에게, 선생님들에게 수없이 많은 매를 맞고 컸다. 그렇게 맞고도 나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사람 구실을 하는 게 그 수많은 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만약 그 많은 매를 맞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아들들을 때리지 않을 작정이다.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일까. 부릅뜬 눈과 주름 잡힌 미간, 큰 목소리가 네 살 아이에게는 폭력이 아닐까. 하지만 다소 강압적으로라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내가 너무 많이 맞고 자란 세대라서 폭력에 둔감한 꼰대가 된 것은 아닐까. 이를 안 닦고 자겠다는 네 살짜리가 칫솔질의 필요성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잘 모르겠다. 나는 일단 “안 돼”라는 말을 안 쓰기로 했다. 왜 그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 가르쳐주기로 했다. 큰놈이 이를 안 닦겠다며 우는 소리를 낼 때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아내가 큰놈을 달래 양치질을 하게 했다. 큰놈의 발을 닦아주면서 나는 말했다.
“우는 소리 낼 필요 없어. 1호 말 잘 하잖아. 울지 않고 똑바로 말해. 엄마아빠가 듣고 해도 되겠다 싶으면 하게 할 거고, 안 되는 거면 못 하게 할 거야. 울든 그냥 말하든 결과는 안 변해. 그러니까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 알았지?”
큰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큰놈은 울면서 제 어미에게 내달았다.
“엄마 안아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뭐부터 전해줄까.”라고 하면 나는 대개 나쁜 소식부터 듣는 편이다.
@rosaria님께서 알려주신 상여자의 Simple Recipe (오렌지 에이드와 마약토스트 편)을 토요일 아침에 해 먹었다. 알려주신 레시피대로 하되, 에어프라이어로 오븐을 갈음했다.
아내는 거의 나만큼 먹기 때문에(아내가 스팀잇을 안 해서 다행) 아내 것으로만 2개를 준비했다. 촉촉함과 바삭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주려고 전자레인지에 1개, 에어프라이어에 1개를 돌렸다.
자 그럼 나쁜소식부터.
짠, 전자레인지 버전.
내가 먹었다.
자 그럼 좋은소식.
없다.
그나마 덜 나쁜 소식.
짠, 에어프라이어 버전.
아내가 먹었다.
보기보다는 맛있다. 정말이다. 전자레인지 버전 말고.
@rosaria님 죄송합니다...
아, 오렌지에이드는 대성공이었다. 사진은 없다.
아, 부야베스는 못 했다. 오늘 저녁에 동네 마트에 갔는데 글쎄 대구 등 흰살 생선, 꽃게, 랍스터 등이 모두 품절. 세상에 우리동네 사람들이 단체로 부야베스를 해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샤프란도 없었는데 잘 됐다. 주문해서 다음 주말에 해먹어야지.
그래서 오늘 저녁엔 짠.
삼겹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