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사이로 고운 모래가 밀려 올라왔다. 이렇게 하얗고 부드러운 모래는 처음이었다. 진짜 백사장(白沙場)이었다. 나는 그 위에 그냥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오후 5시가 넘어서 햇볕이 사납지 않았다. 따뜻했다. 새파란 하늘이 시야에 가득 찼다. 잠이 왔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그래, 이런 게 휴가지.
기록적인 폭염 이틀 뒤였는데 바닷물은 찼다. 순한 파도가 밀려왔다. 2년 전 괌에서 파도를 내리치며 즐거워했던 큰놈은 이번엔 파도가 무섭다며 바다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큰놈은 백사장에 서서 바다에 몸을 담근 내게 “아빠 싸키코하자, 싸키코”라고 했다. 요즘 애들은 모래를 쌓으며 노는 걸 ‘싸키코’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놀다가 한줌 모래를 손에 쥐었다. 일부가 흘러 빠져나갔지만, 일부는 손아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행복은 모래와 같아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운이 좀 따르고 나름 열심히 살면 행복도 손에 쥘 수 있는 게 아닐까, 따위의 쓰잘 데 없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아들이랑 놀았다.
일식집에 갔다. 노인장이 초밥을 쥐었다. 얼굴에서 내공이 엿보였다. 맛을 기대했다. 그냥 그랬다. 나는 초밥 몇 조각과 메일국수를 먹었다. 양이 안 차서 치라시를 한 그릇 시켜 더 먹었다. 운전해야 했다. 나마비루는 마시지 못했다. 노파가 가게 구석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애들을 재우고 호텔 꼭대기 온천에 갔다. 전체가 통유리였다. 한쪽 문을 열고 나가면 노천탕이었다. 밤바람이 선선했다. 온천수가 기분 좋게 끈적였다. 몸을 담그고 속으로 천천히 108을 셌다. 탕 안에서 108을 세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소싯적에 검도를 했다. 운동 전 묵상을 하면서 108을 세라고 배웠다. 108 번뇌를 떨치라는 뜻이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산책했다. 출국 전 에어팟을 챙길까 말까 하다가 챙겼는데, 챙기길 잘했다. 더웠는데 습하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맹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일본어로 뭐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꼬맹이의 아빠가 웃으며 “스미마셍”이라고 했다. 나는 쿨한 외국인인 척 꼬맹이에게 윙크를 해줬다.
오후에는 호텔에 뒤에 딸린 야외 풀장에서 놀았다. 소나기가 쏟아져 급히 철수했다. 호텔 근처 이자카야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마비루 한 입을 마시고 “아, 맛있다”고 하자마자 첫째와 둘째가 순서대로 똥 잔치를 벌였다. 급기야 둘째는 몸을 비틀면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졸린 것 같았다.
둘째를 안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피유우, 소리가 났다. 밤하늘에 금빛 선이 그려졌다. 그러더니 펑, 커다란 불꽃이 터졌다.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모양이었다. 꽤 규모 있는 불꽃놀이였다. 거대한 불꽃이 10여 차례 연달아 터졌다. 작은놈이 내게 선물을 주려고 울었구나. 호텔에서 컵라면을 먹고 잤다.
바닷가 호텔에서 2박 했다. 그동안 먹고, 자고, 놀았다. 아침저녁으로 온천을 했다. 둘째 날에는 아내와 프라이빗 스파를 빌려 단둘이 있었다. 근처 어시장에서 초밥도 사 먹었다. 분위기, 맛, 가격 등 종합적으로 일본에서 해결한 끼니 중에 제일이었다. 보드라운 모래, 미끈대는 온천의 감촉이 아직도 내 몸에 남아있다.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