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죽었잖아. 몰랐어?”
술자리에서 B국장은, 술에 취한 후배가 선배의 코를 부쉈고, 아무개가 아무개와 어느 바닷가에서 뒹굴었으며, 명민했던 A가 죽어 흙이 됐다고 말했다. 옛 선배들의, 설화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잠자코 술만 마셨다. 죽었다는 A 생각을 했다.
내게는 결코 닥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죽음이 피부에 닿기 전까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죽음은 다른 사람의 일이었을 것이다.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 말이 참으로 옳았다.
후배들은 나를 어떤 선배로 기억할까. 선배들의 추억 속에 나는 어떤 후배로 남을까. 멋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특종은 못 해도 글은 잘 쓰는 기자, 그래도 불쌍놈은 아니었던 새끼, 한칼은 있는 놈 정도면 족했다.
누가 죽었다는 얘기는 죽음이 내 옆을 떠돈다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부고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몸서리치고 만다. 뗏목 따위에 의지해 시커먼 바다에 위태롭게 떠 있는데, 파도가 그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내 몸뚱이를 핥는 것처럼 소름 끼친다.
C국장은 몇년 전 상가에서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이야”라고 말했다. 그때 그의 입 한쪽 끝이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인은 비명횡사했다. 상주가 저기 빈소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도무지 C가 인간 같지 않았다. 나는 C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C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기자였다. 그는 사회부 사건팀에 오래 몸담았다. 그것은 그의 자랑이었다. 그는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와 얽힌 이야기 하기를 즐겼다. 사건과 사고의 지근거리에서 그는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을 것이었다.
신문사밥을 한 20년쯤 먹으면 나도 그렇게 될까. 그때 나는 C가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C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것은 고인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약간의 자조 섞인 애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