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사이로 다다미의 건조하고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호텔 스피커에서 일본 전통 음악이 나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현악기였다. 소리가 가늘고 간드러졌다. 옷장 속 개량 일본 전통복을 꺼내 입었다. 막부의 다이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 나는 조선의 후손인데.
내 일본관은 모순적이다.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에 소설 토지와 아리랑을 읽었다. 내게 일본은 임진년에 왜란을 일으킨, 경술년에 국권을 빼앗은 나라다. 동시에 일본은 좋은 술을 빚고, 밥이 맛있고, 온천이 좋은 나라이기도 하다. 나는 도무지 일본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성에 갔다. 그날 일본의 폭염은 기록적이었다고 한다. 백색의 성은 이글거리는 햇빛을 받아 더 하얬다. 성의 상층부에는 호랑이와 학을 금으로 새겼다. 우리 말고도 한국인이 많았다. 조선의 후손들이 조선의 원흉 풍신수길의 성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도톤보리는 명동 시내 같았다. 명동에 중국 관광객이 많듯, 도톤보리에는 한국인이 많았다. 나는 오사카 가이드북에서 밥집을 엄선했다. 그렇게 간 음식점에는 한국인, 중국인만 있었다. 일본인은 없었다. 한국인은 안 가고 중국인만 오는 명동 음식점을 간 격이었다. 도톤보리에서 저녁을 세 번 먹었다. 그중 두 번은 실패였다.
돈키호테에서 한 병 남은 히비끼 위스키를 발견해 산 것이 오사카에서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이다. 그것 말고 좋았던 것은 글리코상 앞에서 사진을 남긴 것, 큰놈과 단둘이 덴포잔 대관람차를 탄 것, 범선 흉내 낸 배를 탄 것 정도다. 한여름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아들들을 데리고, 맛없는 집을 찾아간 내 잘못이겠지만, 다시는 오사카에 가지 않을 것 같다.
일본에서의 일정이 오사카에서 끝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오사카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차를 빌렸다. 그리고 일본 중남부의 바닷가로 출발했다. 바로 가면 오사카에서 2시간 반쯤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가는 도중에 큰놈과 작은놈이 순서대로 똥을 싸대는 바람에 휴게소에 몇 번을 들렀다. 3시간 30분 걸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다음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