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할 때보다, 착한 줄 알았던 놈이 나쁜 짓을 할 때 더 충격적인 법이다.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을 끌어내린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신간 ‘공포 : 백악관 안의 트럼프’을 11일(현지시간) 출간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뒤 백악관의 밀실에서 자행한 것들을 폭로했다.
그게 전부가 아녔다. ‘공포’는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전쟁 반대주의자를 자임한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맨얼굴도 담았다.
‘공포’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2016년 9월 북한 선제 타격을 결심한다. 그의 지시를 받은 국방부는 지상군을 투입해 북한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 안을 밀어붙이려 했다. 그러나 지상군을 침투하면 북한의 핵무기 반격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드워드는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전쟁은 인간 비극’, ‘전쟁은 인간의 어리석음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면서 대북 선제타격 안을 백지화했다”고 묘사했다.
이 책에서는 또 오바마 정부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제거 작전을 세웠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존 브레넌 당시 CIA 국장이 ‘맨 체인지’(지도자 교체) 시나리오를 세게 밀었으며, CIA는 맨 체인지가 ‘검토해볼 가치가 있는 옵션’이라고 평가했다. 미 공군은 지난해 10월 지하 벙커 파괴 훈련도 했다. 김 위원장을 노린 훈련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그럴 수 있다. 그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그에게는 조선반도의 평화보다 미국과 미국인의 안녕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안 우리의 운명이 사선을 넘나들었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뒤에서 그런 일을 꾸몄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힘이 없는 국가의 백성은 서럽다.
우리의 도람푸 선생, 트럼프 대통령이 벌인 짓들은 뭐 별로 놀랍지도 않다. 다만 책이 소개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 일화는 충격적이다. 책에 따르면 도람푸는 문 대통령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외교적인 결례를 저질렀다.
도람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해야 하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며 윽박지르듯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듯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는 수밖에는 문 대통령에게 다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지켜본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이 한국의 반발을 걱정할 지경이었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켈리 등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러시아, 이란, 시리아, 북한보다 동맹인 한국에 대해 더 화를 낸다”고 말했다.
나는 문 대통령의 빠도, 까도 아니다. 그래도 한국의 과반이 뽑은 한국의 대표를 무시했다는 것은 한국을 무시한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나는 모멸감을 느꼈다. 힘이 없는 국가의 지도자도 서러운 모양이다.
청와대는 12일 이 내용에 대해 "우드워드 기자의 책은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이렇다 저렇다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