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무릎에 피가 번졌다.
내가 큰놈에게서 눈을 뗀 것은 채 10초가 안 됐다. 코발트 빛으로 물든 에버랜드의 밤하늘이 너무 예뻐서 잠깐 한눈을 팔았다. 10초는 긴 시간이었다.
아들이 없었다. 놀라서 주위를 살폈다. 녀석은 저만치 양팔을 좌우로 펼치고 제 엄마를 쪽으로 다다다 뛰고 있었다. 그러다 콰당 앞으로 자빠졌다. 넘어지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
“사내자식이 넘어질 수도 있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들 쪽으로 걸어갔다. 녀석의 양 무릎이 제법 까져서 피가 났다. 녀석의 무릎이 깨진 건 처음이었다. 왼쪽 뺨도 긁혔다. 피는 나지 않았다.
“아파. 엄마. 아파. 엄마. 으앙”
녀석은 대성통곡했다.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 나는 아들을 안고 “괜찮아. 넘어질 수 있어. 괜찮아”라고 했다.
유모차를 반납하러 에버랜드 안내 데스크에 갔던 엄마가 뛰어 나왔다. 녀석은 엄마 품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다시 대성통곡했다. 아내는 의무실을 찾았다.
“뭐 그런 거로 의무실까지 가냐.”
역시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잠자코 따라갔다. 간호사가 아들의 양 무릎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간호사가 “아파?”하고 물었다. 녀석은 입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밴드 안 붙이는 게 더 빨리 나아요. 하도 아프다고 해서...”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녀석도 들었을 텐데 반응이 없다. 의무실에서 나왔다. 녀석은 아파서 못 걷겠다고 했다. 세상에 엄살도.
“야, 엄살 부리지 마.”
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그 말을 했다가는 아내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녀석은 집에 오는 길 차 안에서 울다 잠들었다. 놈, 에버랜드 갔다고 좋아했었는데 마지막에 울어버렸네.
이튿날, 퇴근하고 보니 녀석은 새 밴드를 무릎에 붙이고 있었다. 아내에게 뭐냐고 물었다. 아내는 어린이집에서 놈이 하도 아프다고 해서 선생님이 새 밴드를 붙어주었다고 했다.
“OO, 많이 아파?”라고 묻자 놈은 아무 말 없이 인상을 쓰고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했다. “OO 살면서 앞으로 백번도 더 넘어질 거야. 그때마다 아프다고 울면 어떻게 해. 털고 일어나야지.”
나는 바지를 걷었다. 내 양 무릎에 난 상처들을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봐. 아빠도 지금까지 살면서 백번도 더 넘어졌어. 그래도 이렇게 컸잖아. 괜찮아.” 그것은 녀석에게 하는 말이자, 내게 하는 말이었다.
큰놈은 내 상처를 만지면서 “백번도 더 넘어졌어?”라고 물었다. 나는 “응. 여기 이 상처 봐. 아빠가 뛰어가다가 콱 넘어졌는데 무릎이 다 까져서 뼈가 보였어. 너 책에서 근육 밑에 뼈 있는 거 봤지?”라고 말했다. 물론 뻥이다.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뼈가 보였어?”라고 또 물었다. “응. 그렇다니까”라고 나는 또 뻥을 쳤다. 그리고 “괜찮아. OO 이제 그만 울어”라고 말했다.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