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절기교 연습곡이라니 그 이름부터 무시무시합니다. 이것은 19세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이에요. 생전에 그는 ‘피아노의 왕’이라고 불렸습니다. 대단한 비르투오소였다고 해요.
그는 ‘바이올린 귀신’ 파가니니에 비견되기도 했습니다. 리스트가 바이올린을 포기한 건 파나니니 때문이었어요. 바이올린으로는 그와 겨룰 자신이 없었나 봐요. 그렇게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리스트는 후세의 수많은 피아니스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교향시라는 장르를 발명했고, 주제부를 자유롭게 변형하는 등의 실험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은 연주자 본인의 카리스마, 연주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대중의 귀도 이와 같은지, 리스트의 작품은 녹음도 많지 않고 연주되는 일도 적은 편입니다.
초절기교 연습곡은 그 이름부터 리스트와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초절기교! 리스트가 아니면 누구의 곡이겠어요. 총 12개 곡으로 구성했습니다. 어느 곡 하나 쉬운 곡이 없다고 해요.
12곡을 다 듣는 데에는 1시간 조금 더 걸립니다. 조금 부담스러우실 수 있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곡 몇 개만 소개할게요. 편히 들으시다 괜찮다 싶으시면 전곡을 들어주셔도 좋겠어요.
4번 ‘마제파’
우크라이나의 전설적 영웅, 이반 스테파노비치 마제파를 묘사한 곡입니다. 초절기교 연습곡 안에서도 어렵기로 손에 꼽혀요. 광야를 질주하는 말처럼 음표가 도약합니다. 완벽한 기술을 갖춘 데다 대단히 힘세고 큰 손까지 가진 리스트 본인은 이 곡을 자유자재로 쳤을 것입니다. 후세의 피아니스트들이 애를 먹든 말든. 이 곡의 해석에서만큼은 리스트의 현신이라 할 만한 라자르 베르만의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굉장한 연주입니다.
5번 ‘도깨비불’
대기를 유영하듯 멋대로 춤추는 도깨비불을 형상화했습니다. 비대칭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구절로 도깨비불의 움직임을 묘사했어요. 덕분에 기술적으로는 아주 난해한 곡이 되어버렸어요. 청자에게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연주자에게는 절망을 안겨주는 곡이라 할 만합니다. 조성진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신예 다닐 트리포노프의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최근 녹음이어서 음질이 뛰어납니다. 연주 또한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8번 ‘사냥’
사냥감을 쫓고, 사냥꾼에 쫓기는 사냥터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리스트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긴박함을 고조시킵니다. 사냥은 에브게니 키신의 것으로 들어보죠. 키신은 초절기교 연습곡 중 일부만 발췌해 녹음했습니다. 순서도 제멋대로 배치했어요. 특히 사냥을 마지막에 연주했습니다. 장쾌하면서도 유려한 이 곡이 초절기교 연습곡의 마침표를 장식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젊은 키신의 패기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10번 ‘열정’
주제부가 유명합니다. 강렬하면서도 로맨틱해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열정이라는 부제는 리스트 본인이 붙인 게 아닙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어요. 끄트머리의 코다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3번 열정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것으로 들어보시죠. 제 귀에는 베르만의 것이 더 좋게 들리기는 하지만, 또 베르만의 것을 소개해드리기는 좀 송구해서 차선을 택했습니다. 베레조프스키의 녹음 또한 뛰어다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12번 ‘눈쓸기’
이 어마어마한 곡의 대단원이 어찌 이리 스산할 수 있을까요. 부제는 눈쓸기인데, 저는 밤의 폭설을 연상합니다. 새까만 하늘에서 눈송이가 끝도 없이 쏟아져요. 지금까지의 격정을 고요하게 덮어버립니다. 쓸쓸한 죽음. 어딘가 영화 감독 팀 버튼의 작품 가위손을 닮았어요.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연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