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중순과 4월 중순에는 레퀴엠(Requiem)을 자주 듣게 돼요. 레퀴엠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가톨릭 미사곡입니다. 1월에는 어머니 기일이, 4월에는 4·16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정식 명칭은 레퀴엠이 아니라 위령(慰靈) 미사곡이에요. 하지만 보통 레퀴엠이라고 부릅니다. 곡의 첫 가사가 레퀴엠인 데서 유래한 거예요. 레퀴엠은 라틴어로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진혼곡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는 모차르트 레퀴엠을 들으면서, 망자들은 저승에서 평안할까. 진혼곡이 그들을 위로했을까. 사실 레퀴엠이 위로하는 것은 떠난 자가 아니라 남은 자들이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합니다.
모차르트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면서 그는 제 죽음을 예감했다고 해요.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지. 모차르트는 레퀴엠을 다 쓰지 못하고 숨을 거뒀습니다. 그의 제자 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가 곡을 완성했죠.
모차르트가 완성한 곡이 아니어서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역시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쥐스마이어 판본이 가장 대중적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판본이 있기는 해요. 이 글에서는 논란과 판본별 차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대부분 첫 곡 인트로이투스(입당송)부터 마지막 곡 코무니오(영성체송)까지 50분 내외에 소화합니다.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곡별로 분위기가 달라져서 듣기에 지루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감히 이 곡의 백미 몇 부분을 꼽아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지휘 필립 헤레베게 연주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녹음 1996년
일체의 감정을 배제했습니다. 투명해요. 미사곡은 본래 이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휘 네빌 마리너 연주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아카데미 관현악단 녹음1990년
밀도 높은 명연입니다. 조금 빠르지만, 위태롭지는 않아요. 템포 때문에 더 간절하게 들립니다.
지휘 칼 뵘 연주 빈 필하모닉 녹음 1971년
신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무시무시합니다.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 연주 바이에른 방송 관현악단 녹음 1988년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눈물의 날입니다. 절제 따위는 안 해요. 그냥 엉엉 울어버립니다.
지휘 테오도르 쿠렌치스 연주 무지카 에테르나 녹음 2010년
코무니오를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걸까요. 리드미컬한 와중에 스산합니다. 신기한 연주예요.
위에 언급한 녹음 모두 들어볼 만합니다. 국내에는 뵘과 번스타인을 지지하는 애호가가 많습니다. 뵘은 좀 더 엄격하고, 번스타인은 주정적이에요. 헤레베게는 번스타인의 대척점에 있겠군요. 강렬함은 다소 떨어집니다. 마리너의 연주는 단단하고 정교합니다. 쿠렌치스의 것은 좋지만, 너무 개성이 강해요. 조금 나중에 들으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