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아노로 연주하는 교향곡
베토벤 피아노 작품의 양대 봉우리 중 하나인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함머클라비어’(op.106)를 소개합니다. 이 곡을 알려드리게 돼 기쁩니다. 음악사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는 곡이자, 제가 좋아하는 곡이거든요. 동시에 비인기 곡이기도 하죠.
함머클라비어는 피아노로 연주하는 교향곡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어요. 디아벨리 변주곡과 함께 베토벤 피아노 작품 가운데 최대 규모, 최고 완성도, 최악 난도를 가진 곡으로 유명합니다. 4개 악장을 다 연주하는 데 50분쯤 걸려요. 어휴.
앞서 말씀드렸듯, 대중적인 인기는 좀 떨어집니다. 맞아요. 비창(8번), 월광(14번), 열정(23번)처럼 귀에 꽂히는 주제부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함머클라비어는 지루한 곡이 결단코 아니라고요. 아니, 오히려 어마어마한 곡이라니까요.
대단하지 않은 악장이 없어요. 특히 3악장. 아 3악장은, 이런 표현 오그라드는 건 알지만, 우주적입니다. 중반부 둑이 터지듯 음표가 쏟아집니다. 팽창하는 우주, 만화경 속에서 폭발하는 폭죽 따위가 그려져요. 그리고 감정의 정화, 열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3악장에 비견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듣자
그럼 한 번 들어볼까요. 지난 3주간 제가 좋아하는 연주자의 녹음, 전문가들이 호평한 녹음, 애호가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앨범 10여 종을 들었습니다. 어느 하다 뛰어나지 않은 연주가 없었습니다. 겨우겨우 4종의 녹음을 추려 악장별로 소개합니다.
- 1악장 Allegro: 믿듣폴
1악장은 제가 믿고 듣는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피아노곡을 누가 연주한 것으로 들어야 할지 모를 때, 저는 폴리니의 음반부터 찾습니다. 폴리니의 함머클라비어는 교과서와도 같죠. 저는 동의 안 하지만, 너무 완벽해서 재미가 떨어진다는 평도 있습니다. 
- 2악장 Scherzo: Assai vivace: 늙은 사자
2악장은 ‘건반의 사자왕’ 빌헬름 박하우스입니다. 별명 때문에 포효하는 연주를 기대하시면 약간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힘이 필요할 때는 힘을 주지만, 전체적으로는 꾸밈이 없고 담담합니다. 거장다운 풍모가 느껴져요. 박옹이 70대 중반에 남긴 녹음입니다. 실황이라 음질은 열악해요.

- 3악장 Adagio sostenuto: 순도 99.9의 정금(精金·pure gold)
3악장에서는 에밀 길렐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단한 기교파인 길렐스는 오히려 느린 템포로 함머클라비어에 접근합니다. 그것이 곡의 본질에 닿는 길이라고 생각한 걸까요. 관조적이고 여유로운데, 동시에 밀도가 높다면 형용모순일까요. 감히, 최고라고 말씀드립니다.

- 4악장 Largo - Allegro risoluto: 괴물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함머클라비어는 괴물 같아요. 어쩌면 베토벤적이라기보다는 리흐테르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4악장에서는 건반을 부술 듯 내리칩니다. 그러다가 또 부드럽게 어루만지는데. 하, 이 형 능수능란해. 피날레에서 격렬하게 몰아칠 때에는 정신이 다 혼미해져요. 과연 당대의 비르투오소!
(리흐테르의 함머클라비어는 4악장만 따로 떼어놓은 링크를 못 찾았어요. 해서 함머클라비어 전곡 녹음 링크로 갈음합니다. 4악장은 30분부터 시작해요. 이참에 그냥 전곡을 다 들어보시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