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네가 생각난다

afinesword(62)
Published in
#kr
Words
231
Reading
2 min
Listen
Play
9y

U5drcAWuvgpuUrTyB6eTpV8dBYG6KsG_1680x8400.jpg

기쁜 날에는 기뻐서, 우울한 날에는 우울해서 샴페인 모엣샹동을 마시고 싶다. 그래서 ‘황제’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승자는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자에게는 샴페인이 필요하다”고 한 것일까. 전쟁에서 이겼든, 졌든 샴페인을 마시려고. 코스트코에서 모엣샹동을 볼 때마다 병을 들었다 놨다 하곤 한다. 750㎖ 한 병에 6만원은 적은 돈은 아니니까.

나는 많고 많은 샴페인의 맛을 구분할 만한 미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주제에 유독 모엣샹동을 좋아하는 건 예뻐서일지도 모른다. 초록색 병 몸통 한가운데 샴페인 색 라벨을 붙였다. 라벨에는 정직한 활자로 모엣샹동이라고 새겼다. 그 위에는 금색 왕관을 그려 넣었다. 병의 어깨에서부터 주둥이까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좁아진다. 검은 리본을 병목에 두르고 리본의 접점에 인장과도 같은 새빨간 로고를 박았다. 올록볼록한 금박이 코르크를 감싼다.

크기변환_20170623_3364109_1498179198.jpg

6만원은 그러나 아예 구매를 불가능하게 할 만한 돈도 아니다. 마시자, 모엣샹동을. 고운 금박을 거침없이 벗긴다. 튀어나가지 않도록 왼손 엄지로 코르크 마개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철사를 푼다. 왼손을 그대로 두고 병의 바닥을 조심스럽게 돌린다. 어느 순간 ‘팡’하면서 코르크 마개가 밀려 나온다. 황홀한 소리다. 나폴레옹 시절에는 칼로 샴페인의 목을 치듯 땄다던가.

샴페인 향이 피어오른다. 연기도 같이 피어오른다. 샴페인 잔에 모엣샹동을 따른다. 황금빛 액체에 녹색 기운이 비친다. 잔의 몸통이 눈높이에 오도록 든다. 춤을 추는 기포를 가만히 바라본다. 어쩌면 이때가 모엣샹동 최고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샴페인이 찰랑대는 잔에 코를 박는다. 과일 향과 꽃 향기가 난다. 한 모금 술을 머금는다. 탄산이 톡톡 터진다. 청량하다. 신선한 산미가 느껴진다. 잔을 비우고도 한동안 기분 좋은 신맛이 입안에 남는다. 승자에게 영광을, 패자에게 위로를 전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맛이다.

돔 페리뇽은 아직 못 먹어봤다. 한 병에 25만원쯤 한다.

[술]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네가 생각난다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