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옷은 싫다길래 오프숄더 블라우스를 사줬는데 그냥 어깨를 덮은 채로 입고 왔다. 오프숄더로 나온 옷을 이렇게 입을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좀 더 젊던 시절, 그러니까 뭔가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사랑을 쫓던 그때라면 틀림 없이 이런 행동을 싫어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재밌는 사람은 아니다. 어린 여자들은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인한 사람들의 관심에 익숙해, 자신들이 지루한 존재라는 걸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라는 이런 말을 내가 하면 비웃음이나 사겠지. 이건 하루키가 한 말이다.
하지만 아마 그런 점 때문에 더 그녀가 좋은 걸지도 모른다.
첫번째, 쿨한 것처럼 글을 써도 나는 쿨하지 않다. 자주 인용하는 프로이트의 문구처럼, 섹스에 있어 변태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자기 배우자의 기질로서 수용할 수 있는가는 별개다. 번뜩이는 재치가 있지만 성적 기벽이 있던 사람은 수 없이 보아왔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와 세이렌의 일화. 그녀들은 노래를 불러 뱃사람을 유혹해 바다에 뛰어들게 만든다. 선원들에게 귀마개를 씌운 오디세우스는 정작 본인은 밧줄로 몸을 묶었을 뿐 귀마개를 쓰지 않고, 얍삽하게도 그녀들의 노래만 잘 즐기다 나왔다.
과연 이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이 올바른가, 또는 서로의 성기를 죽을 때까지 독점하는 현행 결혼 제도가 합리적인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별도로 나는 바다에 뛰어들 자신은 없다. 적어도 나는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된다는 이중잣대는 들고 있지 않으니 너무 심한 비판은 하지 말아주길.
두번째. 뭐가 잘났는지는 모르겠다만 난 원체 나르시스트라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과는 잘 맞지 않았다. 공통점에 운명 같이 끌리고 불타올랐던 적은 많지만, 이내 서로 내가 주인공이라고 다투다가 이별하곤 했다. 자아가 무거운 사람 둘이 함께 있으면 숨쉴 공간이 없다.
알고 지냈던,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던 참 글을 잘 쓰던 미인의 여성 블로거가 있었다. 정작 그 사람 남편은 글 같은 건 전혀 쓰지 않는 공대 출신의 단순한 남자였다. 항상 뭔가 생각하고 쓸 거리가 있다는 것을 '영혼이 깊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깊다'라는 것은 '어둡다'도 될 수 있고 '예측할 수 없다'도 될 수 있다. 나는, 그녀가 아마 그 남자를 어렵지 않게 컨트롤하며 살고 있을 거라는 가설을 세워보았다.
아니 실은 기질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질이라는 것도 특정 조건에 부합해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문화권에 따라서는 그걸 영원히 알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의외로 흔하다.
어딘가 직관적으로, 나는 그녀가,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크림힐트와 닮았다고 판단했다. 온전한 순수함과, 끔찍한 요부이자 악녀라는 두 가지 모습. 하지만 공존하지는 않는다.
머리가 나쁘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서 상처를 받으면 반드시 자신을 바꾸게 되어 있다. 거절이든 배신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 시간이 누적되면 안 좋은 의미에서의 어른이 된다.
실은 오프숄더를 잡아 당겨 어깨를 가리고 온 그녀도, 시일이 지나면 분명 내가 치를 떨었거나 또는 치를 떨게 만들었던 그 모습을 따를지도 모른다. 다만 이 시점에 그녀의 삶에 개입했다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다른 결과를 안겨줄까.
나는 상처를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고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상처를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은 상처가 없이도 잘 자랐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당신을 상처없이 지켜주고 싶다. 심지어 그대가 전혀 성장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상이 금홍에게 쓴 글이다. 다소 철딱서니 없는 모습으로 남는다고 해도, 어쩌면 나와는 달리, 사랑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이 사람에게 나는 늘 너무 예뻐, 이 사람에게만은 세상 누구보다 내가 가장 훌륭한 여자일거야, 남자들은 다 똑같아도 우리 남편은 달라라는 그런 생각으로 쭉 성장 없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틀릴 수 있는 가설일 뿐이다.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자기 딴에는 제법 머리를 썼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시도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