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오더쿠스] 4. 탐문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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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내내 나는 어김없이 학원 보충수업을 들었다. 김웅섭은 전과 달리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수학 문제를 풀었다. 양선생은 첫인상과 다르게 제법 샤프한 사람이었다. 성격은 더러웠지만 그의 강의력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양선생에게 배운지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나의 수학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하기야 매일 밤 이렇게 일대 일로 반복학습을 시키니 그렇게 되지 않는 편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반면 김웅섭의 수학 점수는 처음보다 10점 정도 오른 20점대 중반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그건 전적으로 그가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버리고 답안지를 찍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5지선다 문제에서 찍기만으로 25% 승률을 유지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굉장한 실력이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 김웅섭은 수학적 머리가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똑같은 문제를 몇 번이나 반복해도 풀지 못한다는 건 머리 어딘가에 구멍이 뚫렸거나 강의시간에 딴생각만 하고 있다는 증거다. 엉터리 해법일지라도 예전처럼 호방하게 풀어나가던 모습이 차라리 멋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건 양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양선생은 처음의 패기와 자신감을 잃고 하루가 다르게 평범한 선생님이 되어갔다.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던 그의 일갈도 더는 들을 수 없었고 울끈불끈 했던 그의 근육도 어쩐지 전보다 작아보였다. 김웅섭에 대한 체벌의 정도 또한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혼을 담아 때리던 양선생도 이제는 지쳤는지 그냥 그러려니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김웅섭이 학원을 빠진 어느 날이었다. 양선생과 나뿐인 강의실에는 기묘하리만치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조용히 문제를 풀었고, 양선생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다. 신기한 일이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꼴 보기 싫던 김웅섭이었는데, 막상 그가 없으니 양선생이나 나나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양선생은 뒷짐을 진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5층짜리 건물에서 보이는 풍경이라곤 맞은편 건물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에어컨 실외기 뿐이다. 그걸 응시하는 양선생의 모습은 마치 면벽수행을 하는 수도승 같았다.

갑자기 양선생의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은 이만 집에 가라.”

“집에 가라고요?”

“공부 잘하는 놈 잡아둬서 뭐해. 못하는 놈이 안 왔는데.”

양선생은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나는 잠시 그의 말을 곱씹었다. 양선생 눈치를 보던 내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저는 앞으로 야간 강제학습....... 아니, 야간자율 학습 그만해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안 돼.”

“왜요? 공부 잘하는 놈 잡아둘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놈이랑 단둘이 수업 하고 싶지 않아.”

“........”

침묵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양선생이 물었다.

“너 그 놈이랑 친하냐?”

“아니요.”

“내가 사교육계에 몸담은 지 올해로 15년이다. 그동안 참 별별 놈들을 다 만나봤지. 갑자기 학원에 찾아와서 맞짱 뜨자는 놈들이나 수업 끝나고 맞담배 피던 놈들에게도 나는 최선을 다했어. 돌이켜보면 그것만이 내 삶의 이유였다. 애한테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근성만 있으면....... 나는 걔들한테 흠이 있어도 끌어안고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말이다......”

창밖을 내다보던 양선생이 나를 돌아보았다.

“강사 생활 15년에 그런 놈은 처음 봤다. 항상 넋 나간 듯한 얼굴로 수학 문제를 풀어대는 그 놈이 무서워. 심지어 같은 문제라도 매번 풀 때마다 답이 다르단 말이야. 아마 그 놈은 그게 죄다 똑같은 문제였다는 것도 모를 거야.”

“무섭다고요?”

“그래. 김웅섭 이놈은…… 매가 소용이 없단 말이다.”

어쩐지 양선생의 독사 같은 눈가가 처량해보였다. 한편으로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선생의 주특기는 빠따질이다.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빠따질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규야.”

“네, 선생님.”

“나한테 수업 들은 놈 치고 수학 점수 80점 못 넘은 놈 없다. 그게 내 자부심이지. 근데 김웅섭 이 새끼는 도무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얼떨결에 양선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선생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봄비가 창문 때리는 소리가 제법 처량했다. 양선생이 손짓으로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기 전에 재빨리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떠났다.
인정하긴 싫지만 김웅섭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 이런 것도 일종의 매력일까? 분명 겉모습은 우리랑 똑같은 사람인데 어딘가 근본부터 다른 부류는 아닐까? 어쩌면 인류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 아니 퇴화한...... 그러나 진화에는 지향성이 없으니까 따지고 보면 진화라 해도 무방할, 아무튼 김웅섭의 등장은 그런 신인류의 출현일지도 모른다.

김웅섭은 양선생의 강의시간에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조용했지만, 양선생만 없어지면 다시금 예전의 못된 버릇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수학 수업만 끝나면 그의 얼굴에는 특유의 오만한 생기가 살아 꿈틀거렸으니까 말이다. 사회 수업은 특히나 김웅섭이 활개 치는 독무대였다. 김웅섭은 수업 내용 중에 조금이라도 역사나 군사 분야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벌떡 일어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떠벌리곤 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면 그가 떠드는 내용들은 사실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우리나라가 신탁 통치를 받게 된 것은 결국 우리가 자력으로 독립한 것이 아니라 추축국을 꺾은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했기 때문이지요.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전후 국제 관계 구상을 위해 얄타에서 모였었죠. 이들은 당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그 대목에서 김웅섭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선생의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히틀러입니다!”

“아, 그래요. 2차 대전은 히틀러가 일으켰지.”

“밀리터리 분야에 있어서는 제가 저희 학교 최고의 전문가라 자부합니다.”

김웅섭은 껄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영어 시간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그는 늘 자신이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식 영어 발음을 즐겨 사용한다고 했다. 늘 그래왔듯 자신의 발음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빅토리아 시대는 우리 조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이라 그의 발음이 정말 그렇게 품격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김웅섭의 발음이 제법 그럴싸하긴 했다. 물론 김웅섭의 영어 성적이 좋았던 건 아니다. 다시 말해 김웅섭은 영어 음독에 특화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어 선생은 교재를 읽어야 할 일이 있으면 늘 김웅섭을 호명하곤 했다.

“38페이지 첫 번째 문장을 읽어보세요. 김웅섭 학생?”

“I spared no effort in doing my midterm project. Steven, it's up to your effort.”

김웅섭은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 비장한 김웅섭의 얼굴은 꼭 셰익스피어 비극의 숭고한 맥베스 같았다. 발음은 대단히 좋은 것 같은데, 스티븐을 꼭 ‘스테판’으로 발음하는 그의 센스만큼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자애들 사이에선 그런 김웅섭을 노골적으로 싫어하고 피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여학생들은 대체로 김웅섭에게 무관심했다. 김웅섭은 이를테면 삐뚤게 박힌 나사못 같은 존재였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굳이 나서서 바로잡을 이유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김웅섭을 가장 혐오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인물은 역시 양선생이다. 양선생은 학원의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종종 김웅섭의 수업태도를 묻거나 그에 대한 생각들을 떠보곤 했다. 선생님들로써도 곤욕이었을 거다. 그 사람들 역시 김웅섭에 대해 대답할게 별로 없었을 테니까. 보통 선생님들은 하위권 학생에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김웅섭은 늘 하위권이었다.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아무도 김웅섭의 불성실한 수업태도를 문제 삼진 않았다. 그래서 양선생에게 질문을 받는 선생님들은 보통 다음과 같이 얼버무렸다.

“웅섭이는 특이한 아이지요. 애는 참 착한데. 호호”
양선생의 집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번은 수학 오답노트를 들고 양선생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양선생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바람에 나로서는 허탕친 날이었다. 텅 빈 학원 교무실을 돌아 나오려는데, 양선생이 책상 위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분명 양선생의 손 글씨였다.

-김웅섭은 과연 신인류일까?

다소 희극적인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양선생은 왜 그렇게 김웅섭에게 집착하는 걸까? 마치 이단의 냄새를 맡은 종교 재판관처럼 광신적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가 뭘까? 나는 양선생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책상 위엔 드문드문 양선생의 메모가 붙어있었는데, 대부분은 김웅섭에 대한 내용이었다.

-김웅섭에게는 과연 우리에게 없는 재능이 있는 걸까?
-김웅섭은 정말 쿨한 놈인가? 그는 우리가 가진 것들에 관심이 없는 걸까?
-김웅섭은 속세를 초월한 용기를 가진 놈일까? 아니면 그저 겁쟁이인가?

제법 정곡을 찌르는 물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양선생의 쪽지를 한 줄로 늘어놓았다. 두어 번을 다시 읽어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궁극의 질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김웅섭은 우리와 다른 존재인가?’

나 역시 김웅섭에 대한 궁금증을 간직해오긴 했지만,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진실에 대한 묘한 사명감이 들었다. 물론 양선생에 대한 개인적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이쯤 되면 김웅섭이라는 독특한 인간보다 양선생의 과민반응이 더욱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