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안녕하세요, 인생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냅니다. 제가 지금하고 있는 고민들을 풍류판관님께서 이미 해보았고 그래서 저에게 답변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메일을 보냅니다.
일단 저를 간략하게 소개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의 남학생이고 모 대학 상경계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을 작년에 입학해서 또래에 비해 늦은 편입니다. 현재 금융공기업과 프랜차이즈에 관심이 있습니다.
풍류판관님의 글이나 직장선배님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고민 그리고 그 이전부터 해왔던 고민은 결국 같습니다. 좋은 직장을 들어가거나 혹은 안정적인 삶을 살아도 결국에는 그때 뿐 다시 생계에 대한 고민은 끊이자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공기업 대기업 공무원을 희망하며 안정적이거나 대기업가서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요새 100세 수명시대에 빠르면 40대 초반 늦어도 50대 후반이면 대부분 은퇴하는 걸로 압니다, 그이후에는 퇴직금, 연금, 그동안 저축해온 금액으로 살아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끔 창업해서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꿈, 종착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경제적인 자유 혹은 빈곤탈출의 해결책이 되기엔는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 또한 주위친구들 처럼 안정적인 금융공기업쪽에 관심갑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투자로 대박, 창업으로 성공, 부유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 창업이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인생에 대한 방향이나 비젼, 혹은 어떤 포부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풍류판관님께서는 제 나이로 돌아오신다면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혹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어떤한 비젼을 갖겠습니까?
현재 어떠한 비젼이나 소명의식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메일을 보내서 죄송합니다.
현재 여행중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답변]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인생에 원래 답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시기 별로 관점도 다릅니다.
일단 저에 대한 질문에 답을 드리겠습닙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 다시 돌아간다면 좀 더 욕망에 솔직하고 거기에 용기를 가지고 부딪히는 인생을 살고 싶네요. 예를 들면 저는 제가 여자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과 별로 인기가 없다는 그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직이 되는 길을 택했는데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그렇게 우회하지 말고 성형수술을 받거나 하루에 길거리에 있는 여자 100명에게 말을 걸었을 것 같습니다. 돈에 욕심이 있다면 괜히 도서관에서 선비 흉내나 내지 않고 돈 많은 형들을 만나서 그들의 허세라도 열심히 들었을 것 같고요.
무엇을 하거나 비젼을 가지겠냐고요…... 어차피 당시 제 인사이트는 형편 없었고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사업을 해도 실패했을 것이고 게을렀기 때문에 작가를 지망했어도 책 한 권 내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간다면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만 이십대 중반의 저는 그럴 역량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뭘 하라고 주문하기도 어렵습니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건 개폼이겠지만 무척 운이 좋아 오히려 노력한 것보다 과분한 수준으로 살고 있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게 저에 대한 답이고요, 좀 더 질문자님의 관심사에 대해 말씀 드리면……
금전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전통적으로 그걸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창업이 아니라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 그 중에서도 달리 돈을 가져다 쓸 것으로 예측되는 남자 형제가 없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과 나오지 않은 사람 양자 간 일생 동안 기대되는 예상 소득은 의외로 차이가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지금 기준으로 대기업 직원과 중소기업 직원이 둘 다 죽어라 10년 저축하면 한 1, 2억이 차이 날 겁니다. 어디 집을 사느냐, 재테크가 실패하느냐 또는 성공하느냐에 따라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차이입니다). 다만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고소득 배우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져 일단 급여가 더블이 되고, 또 요즘에는 집안에 재력이 있어야 학벌도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결국 부유한 집안 둘의 결합이 되어 삶의 질 격차가 크게 벌어지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드라마의 주 레퍼토리인, 사람들이 가문끼리 결혼에 그렇게 목을 매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해방 직후 전부 못 살았던 그 시절을 잠깐 제외하면요.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현 시대는 오히려 더 심해진 감마저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유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해결책이 되겠군요.
‘차선’으로 창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다니고 계신 학교는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닙니다. 현재 자산이 800억이 넘고 통장에 현금만 300억이 넘는(300억이 넘으면 단톡방 친구들에게 모두 원하는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걸 지켰습니다, tmi지만 저는 그 단톡방에 없습니다) 제 친구도 그곳을 졸업했습니다. 사실 그 학교도 분명 괜찮은 곳입니다. 그래서 일단 고생스레 공부해서 입학에 성공하면 자기가 뭐라도 된 냥 으스대곤 하죠. 대학 1, 2년을 먼저 다녔다는 이유로 새내기들한테, '인생이 뭔지.' 설파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제 친구는 그 시점에 여대 앞에서 비니 모자를 팔았습니다. 원가가 몇백원인데 그걸 8,000원에 팔 수 있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죠.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이 세상을 주도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시면 무엇이 돈이 되는지는 의외로 빨리 찾으실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부유한 여자와 결혼하거나 창업을 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군요.
다만 어차피 답은 없습니다.
원래 세상에 공짜는 없어서 배우자 집안의 돈을 쓰는 것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습니다. 사실 7, 8억짜리 집을 받는 대가로 매주 주말마다 배우자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죠. 조건을 보고 중매로 결혼하면 불행하다는 것도 선입견이나 근거 없는 질투에 불과합니다. 이혼 사건을 많이 담당해본 변호사로서 말하면 보통 결혼은 돈이 없으면 비참해지고, 클래스 있는 집안끼리의 결혼이 이혼으로 귀결되는 사례는 드물긴 합니다. 근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님의 인생은 한 번이기 때문에, 80%의 리스크와 20%의 리스크가 있는 뽑기 중 후자를 택했다고 해도 그건 틀린 선택일 수 있습니다. 도박이나 투자처럼 수를 반복하면 통계대로 되는 결정에야 처음 후자가 꽝이 나왔다고 해도 계속 후자를 뽑아야 되지만, 한 번의 선택에서 확률에 근거해 후자를 택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지 역시도 의문이 있습니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 20%는 정말 엄청나게 높은 수치거든요. 고민했는데 꽝을 뽑았다면 그건 결혼을 두 번 할 게 아닌 이상 질문자님의 삶에서는 100%로 그냥 닥쳐 버린 현실이니까요.
사업은 더 위험합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사업을 하며 돈 좀 번다고 거들먹거리다가 지금 벌써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망한 경우도 많습니다. 나이가 든 어른들은 지금보다 훨씬 사업해서 성공하기 쉬웠던 경제 성장기를 사셨던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을 하라거나 한 조직에 충성하며 붙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얼핏 사업한 사람이 반짝이는 시점이 있어도 길게 보면 결국 꾸준히 급여가 나오는 삶이 통상 더 결과가 좋다라는 걸 보아오신 것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 같은 100세 시대에 인생 한 번 사는 것을 꾹꾹 참으며 그냥 '평범한'으로 죽는 것도 싫겠죠. 조직을 다닌다는 건 자기 개성을 양보한다는 것이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싫어하던 그 인간들과 똑같이, 복제품처럼 변해버린 자기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참 싫을 것입니다.
어차피 정답은 없고 저도 모르고 질문자님도 모르고 나이 든 어른들도 다 모르니 그냥 본인이 꼴리는 대로 선택하시면 될 것 같고 딱히 없다면 동전 던지기도 좋은 방법입니다. 유명 디자이너 피에르가르댕이 자기 진로를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생각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저는 그 무엇보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유연함이자 성실함이며 또한 겸손입니다. 닥치는 운명이라는 걸 자기 머리나 의지로 맞서보려는 시도는 그 시점에서는 나름 그것도 장엄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그냥 어리석은 고집에 불과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부딪혀 보고 행동하라고 주문하고 싶네요. 머리로 아무리 고민해도 뭐가 답일지는 나이가 들어도 모르고 젊을 때는 더 모릅니다. 그래서 고민할 시간에 뭐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일단 빨리 해보고 실패하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자기 자신을 잘 알 수 있고,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 파악할 수도 있거든요. 경험해보지 않고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것이 적고, 고민을 더 해서 시행 착오 없이 앞으로 가겠다는 건 사실 오만입니다.
전술한 것처럼, 저는 이십대 중반에 참 아는 게 없었습니다. 저 대표라는 친구가 모자를 팔면서 비즈니스를 할 때, 컴플렉스만 가득했고 변호사가 되면 마치 동화 속 왕자님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 생각 없던 시절로 인해 지금 저는 딱히 부자도 아닙니다. 다만 친구들이 진로를 고민하며 어학 연수 등으로 시간을 떼울 때 그냥 후딱후딱 로스쿨을 입학하고 무휴학으로 시험을 치루어 20대에 변호사가 될 수 있었고,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별 생각 없이 처음 뽑아준 직장에 그냥 취업해버렸습니다. 연애를 할 때도 특별히 큰 고민 없이 그냥 좋으면 닥치는 대로 고백했습니다. 재테크도 책도 얼마 안 읽어보고 그냥 계좌부터 만들어서 아무 주식이나 사보았습니다. 제가 생각이 많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뭐든 빨리 빨리 일단 하다 보니 그래도 아주 많지는 않은 나이에 제가 뭘 잘 하고 못 하는지, 뭐를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 지가 눈에 보이더군요. 지금 저는 인생의 진로를 완전히 바꾸었는데, 아직 삼심대 초반이기에 가능한 것도 없지 않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도 않고 어릴 때는 내가 무슨 사람인지 알기 어려우니 일단 아무 것에나 부딪혀 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지금부터 집에 돈 많은 여자를 찾아다니시든, 창업을 위해 맨발로 뛰시든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금융 공기업에 들어가서 본인이 조직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하시든 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지 말고 그냥 아무거나 일단 하고 정말 아니다라는 어떤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쭉 밀고 나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