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결혼할 때, 장모님이 가지고 계시던 반지를 녹여 우리 두 사람의 반지를 만들었다. 난 방학마다 노가다를 했고, 학기마다 도서관에 살았다. 수석졸업을 하고 상도 받고, 임용도 합격했지만 사회인으로선 학자금 대출 빚쟁이로 시작했다.
결혼에 서로 양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남자가 집하나, 결혼 반지 하나 해결하지 못해 ... 결혼 내내 죄송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장인, 장모님은 단 한 번도 돈문제로 서운함을 내색하지 않았다.
장모님은 공장으로 일을 나가셨다. 장인어른은 다니던 회사에서 명퇴를 당하셨다. 거의 통보수준이었다. 그리곤 대리운전을 조금씩 하셨다.
그러다.. 처남이 결혼을 하게되었다. 처남과 처남댁은 대기업에 다녔다. 특히 처가쪽은 집안이 좋았다. 결혼 전 처남은 장인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난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전에 장인 어른 식당이 망하며, 대학생 때 계속 알바를 했던 처남이었다. 우연히 처남에게 운전을 알려주게 되었다.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졸업하자마자, 대기업 취직하고... 일찍 자리 잡고 대단하다. 처남도 잘 되서, 어른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요새 취업이 힘든데... 이제 결혼하면 차도 사고 해야지
예, 회사 사람들도 좋은 차 많아서.. 뭐 살지 고민이네요. 집도 알아봐야하고...
아마도 회사 동료 중에 좋은 집안 출신이 많았나보다. 처남 연봉에는 상상하기 힘든, 차를 몰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호텔식 결혼식에, 34평 아파트로 바로 시작하는 사람도 많았다.
몇 마디 차에 대해, 재미나게 얘기를 주고받다가... 장인 어른 생각이 나서 ... 내 얘기를 처음으로 털어놨다.
그래, 요즘 참 힘든다. 나도 대학교 때 솔직히 부모님 원망 많이 했다. 친구들은 여행 다내고, 술 마실 때.. 나는 도서관에... 노가다 하다 다치고 아플 때...
근데.. 그게 내 삶이더라고... 부모님 도움 물론 받으면 좋겠지만.. 재미 없잖아. 내 삶이 아니잖아. 내가 벌어서 식탁사고.. 하나씩.. 그게 또 재미지.
몇 마디 처남과 얘기를 더 나누고.. 다행히 처남과 장인 관계도 더 좋아졌다.
어제... 처가를 방문했다. 수박이랑 삽겹살도 사고.. 장인 어른은 약속이 있으셔서 함께하지 못했다.
장모님께서 요즘 장인 어른이 도통 먹지 않는다고 한다. 입 맛이 없다며...
생각해보니, 1년? 6개월? 전부터 많이 안 드시네요. 일부러 건강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별로 음식 생각도 없고... 일도 못하고 있으니까... 제대로 직장도 없고.. 미안해서 그런가봐... 그사람이...
당뇨 때문에 조절하시는 줄 알았는데.. 역시나 어른들은 다 보고, 다 느끼고 계신가 보다.
나는 어떨까? 나는 어떻게 될까?
무리에서 방출된 늙은 사자처럼...
갑자기 나도 명퇴하면, 뭘해야 하나? 물 밀듯이 그런 생각이 몰려 왔다.
역시 남자는 혼자로 살아 가는 시간이 많은가 보다. 은퇴하면 삶을 어떻게 살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남은 시간을 마감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