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 음악인 삶은 어떤 것일까?
스스로 부여한 휴식의 끝이 다가오니 문득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누군가 직업을 물어볼 때 당황스럽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작곡가다. 그런데 작곡으론 돈을 벌지 못하니 음악 선생님이라 말하는 게 더 맞는 것도 같다. 물론 쑥스러울 때는 있었으나 한 번도 거창하게 말하지 않은 적은 없다.
학교를 떠나오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그 삶에 대한 보상으로 한달 반의 휴가를 (스스로에게) 받은 것 같은데 잠깐 놓아버리자마자 당장 다가올 한치 앞의 삶 조차 내다볼 수 없다니. 이것이야말로 웃픈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로서의 음악을 떠나오고서야 음악을 듣게 되었다. 쉼 없던 3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들을 수 없던 음악을 이제야 다시 찾게 되었다. 그간의 시간을 책망하기라도 하는 듯 수많은 음악들이 각자의 언어로 다가왔다.
음악인으로 살고 있지만 예술가라기보다는 음악이라는 기술을 가진 기술자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음악이라는 기술을 익혀 삶을 근근이 연명하는 정도에 그친다고 생각했다.
'음악 기술자'인 내가 쉬는 동안은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면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음악 기술자'인 내가 기술 연마를 등한시 한다는 것에 자책도 있었지만 모종의 쾌감도 함께 느껴졌다.
레슨 때 종종 학생들에게 '시간만 흘러도 실력이 는다'고 말하곤 했다. 쉬는 동안 음악을 들어보니 그간 들리지 않던 게 들렸다. 선생님인 내게도 '시간만 흘러도 실력이 는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간 들리지 않던 것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귀에 들어왔다. 가령 어떤 곡의 조성이라거나, 화성적 기법이라거나, 장르와 같은 것들.
가끔 TV를 보면 한 분야에서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나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그 일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모습들을 보면 죄책감이 들곤 했다. 나는 오랜 기간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음악을 듣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그 시간들이 즐겁기까지 했던 것이다.
부족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음악이라는 기술을 사랑한다는 것 뿐이었는데 직업이 되면서 그 의미는 퇴색되고 삶을 연명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부터는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뜬금없는 자기고백을 뒤로하고 다시 화두로 돌아와보자면.
직업이 좋아하는 일이 되는 것이 직업적 음악인의 삶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직업이라는 무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빼앗기는 삶이기도 하다.
이 끝없는 딜레마 속에서 나는 음악을 사랑하다가 다시 또 미워하다가.
음악을 사랑하기 위해 일을 놓다가, 삶을 위해 다시 일을 잡다가 말다가 하는 삶.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니 실력은 늘'테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어영부영 새로운 기술을 익힐테고, 가끔 돌아보면 그것이 연륜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날 테니 행복도 하겠다.
George Benson의 음악을 들으며, 그 안에 숨은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건반을 그렸던 오늘 하루. 그 상상 속에 건반을 누르던 내 작은 손.
다시 또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장을 다듬는 기술자의 마음으로.
'장인'을 따라가기엔, 우주와 같은 '음악'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내 작은 대장간을 지키는 행복으로 그렇게 살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