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과 관련해 새로운 사람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가끔 일로 만나는 분 중에 제 음악을 미리 들어와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감사하게 이분도 그랬습니다.
곡을 잘 들었다면서, 제가 처음 만들었던 곡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 곡은 제 흑역사로, 1년 뒤에 유통을 금지시킬지, 2년 뒤에 금지시킬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곡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제가 너무 창피해하는 걸 알기에 제목조차 언급하지 않는 그런 곡입니다. 제 곡인데 저도 안 들은 지 몇 년 되고 해서, 편한 마음으로 그분과 그 곡을 같이 듣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처녀작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데뷔곡일 테고요. 대학에 들어가 과제로 썼던 곡인데, 이번이 아니면 평생 발매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무작정 만들어보았습니다. 이 곡을 만들던 시절을 저는 불필요하게 예민했던 시기라고 자조하곤 하는데요.
이때는 저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시절이었습니다. 오로지 제 욕심으로, 한 곡을 열 번도 넘게 합주했던 것 같습니다. 매 합주를 녹음해 듣고, 좋았던 부분을 추려 각 파트별로 악보를 새로 만들어주었어요. 멜로디와 코드가 적힌 간단한 악보에, 악기별로 코멘트를 자잘하게 넣어 연주자들을 괴롭히곤 했습니다. 그 덕에(?) 연주자들은 열 번의 합주 동안 늘 새로운 악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시절 제가 뽑았던 악보만 해도 족히 200장은 넘을 것 같아요.
잘하고 싶은 욕심을 악기의 수로 환산했던 저는 풀 밴드로도 성이 차지 않아 브라스 섹션을(심지어 리얼 녹음으로) 넣으려고 했는데요. 첫 브라스 편곡이라 엉성한 게 많았습니다. 결국은 여러 문제로 브라스는 빼기로 했어요.
이 곡을 들으면, 녹음실에서 허둥댔던 제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면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 당시 저는 협의되지 않은 연주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녹음실에서 크고 작은 잡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급기야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그 부분이 어디냐 물어보면 찾지도 못하겠네요.
이 곡을 녹음한 다음 날 녹음본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정도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어요. 잠만 잤는데 늘 녹음이 망하는 꿈을 꿨습니다. 진지하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했던 시기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나'와 '현실의 나'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지요. 다 엎고 숨어 지내려던 제게, 동료들이 용기를 불어넣어 줬습니다.
그런 상태로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이 곡이 오랫동안 흑역사로 남았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듣게 되니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곡을 듣다 보니, 그때 무리하게 욕심냈던 부분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걸 좋아합니다. 스스로 '너 이것도 할 수 있어?', '그럼 이것까지도 할 수 있어?'라고 몰아세우곤, 그것을 해내는 쾌감을 즐기곤 합니다. 언제 내가 극한의 상황까지 갔었나 생각해보면 여지없이 음반을 준비하던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을 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열정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번 앨범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기간도 촉박했고, 편곡도 엉성했고, 그래서 완성도도 낮았기에 스스로 더는 음악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곡을 들으니, 시간이 지나면 이 앨범도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우연히도 며칠 뒤엔 앨범 작업을 도와준 분을 만날 일이 있습니다. 넌지시 "저 다음 앨범 준비할까 봐요"라고 운을 떼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진짜 잘하고 싶지만, 잘못하면 어떤가요. 돌아보면 늘 그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은 했던 것 같은데요.
옛날 생각이나 집에 돌아와선 예전에 편곡했던 브라스 버전 가이드 음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때 브라스를 포기하면서,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하고 미뤄두었는데요. 그 악보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잠들어 있네요. 기회는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브라스를 포기하게 되면서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원래 관악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 이후로 곡에 한 번도 관악기를 쓰지 않게 되었어요. 예전에 이런 고민을 섹소폰 연주자에게 털어놓을 일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꽤나 명쾌한 해답을 주더라고요.
나 원래 XX만원 받는데 공짜로 해줄게.
스치듯 얘기한, 이미 몇 년이나 지난 말이지만, 작곡가들은 이런 말을 절대 잊지 않습니다.
모른 척, 뻔뻔하게 전화나 해볼까 봐요.
"오빠? 그때 했던 말 기억 나시죠? 제가 진짜 좋은 곡 만들었는데 연주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