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일이 늦게 끝났다. 2호선은 출퇴근 시간에만 사람이 많은 줄 알았는데, 이 시간에도 붐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람들 사이에 겨우 낑겨서는, 버스를 타지 않은 걸 후회했다. 숨 막히는 지하철에선 밀린 카톡 몇 개랑 전화 몇 통을 했다.
전화를 끊고 음악을 틀었다. 오늘 선곡은 대박이다. 너무 잘 맞아.
강남에는 참 예쁜 사람이 많았다. 이 시간에 가야 예쁜 사람을 볼 수 있구나. 일에 절어 언제 지워졌는지도 모르는 내 화장기 없는 얼굴이 새삼 부끄러웠다.
몸이 피곤해서, 평소보다 퉁명스러웠다. 상대방이 내 눈치를 보는 것도 같고...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하기 싫으니까... 실은 하기 싫은 게 아닌데, 타인에 의해 하게 되면 하기 싫은 일이 된다. 같은 일을 나의 의지로 시작하면 즐거운데, 당신에 의해 시작하면 괴로워지는 게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거리 그 이상을 원한다. 아마 내가 잘 웃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싫어하지 않지만, 만나고 싶진 않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그들을 싫어하면서, 못된 내가 되기 싫어 자기 암시를 하는 건 아닐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집 근처 역에도 만취한 사람이 하나둘 보였다. 몸을 있는 힘껏 비척거리면서, 일행의 걱정을 받는 사람을 보았다. 전혀 괜찮지 않은 걸음걸이로, 괜찮으니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한다. 집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문득 나도 저렇게 몸을 비척거리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마지막으로 비척거렸던 게 언제인지 생각해본다. 2015년 대학로에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공연이 끝났을 때, 그 뒤풀이에서 그랬다. 그 이후로 한 번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술자리는 질색이다. 술이 몸에 받지 않는 게 시작이었지만, 그것보다도 취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더는 믿지 않게 됐다.
금주 중인데 저 비틀거림을 보니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진다. 마트를 들러 맥주를 왕창 사버렸다. 가방이 무거워 어깨는 빠질 것 같지만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어 동네를 방황한다.
집에 들어와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취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면서, 나는 반쯤 취해 이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