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을 쓰고 오늘 일을 미뤄야 할 것 같다는 양해 문자를 보냈다. 날이 밝는 대로 응급실에 갈 생각으로 침대에 누웠는데 눕자마자 복통이 더 심해졌다. 삼십 분 정도 누워있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내 증상과 가장 가까운 건 맹장이 터지는 거였고, 맹장이 터지면 바로 수술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미루지 않고 응급실에 간 것도 맹장이 터진 거면 빨리 처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원할지도 모른다는 착잡한 생각과 함께 백팩에 갖은 잡동사니를 챙겨 병원으로 갔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는 내 배를 만져보고 허리를 손으로 가볍게 치더니 맹장이 터진 것 같은데 CT를 찍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후로는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됐는데, 나는 졸려서 모든 게 다 멍했다(지금도 응급실에 다녀온 게 꿈처럼 느껴진다).
피검사를 하고, CT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또 다른 검사들을 했는데, 사람들이 내 몸을 어찌나 함부로 다루던지. 팔 곳곳에 멍이 들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제자리를 찾은 주사바늘에 링겔을 꽂고, 간이침대에 누워있었다.
내가 있던 곳이 추웠는지, 병원이라는 공간 때문인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얇은 천 너머로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누워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의사가 와서 "맹장이 터졌습니다.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말할까 무서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기다리다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커튼이 열리고 의사가 들어왔다. 다행히도 급성 장염이고 염증이 심해 통증도 심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약을 챙겨주며 돌아가도 된다는, 3일 후에 와서 한 번 더 진료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수술을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보다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정말 수술 안 해도 되나? 이대로 집에 가도 되나?
상상 이상의 진료비를 내고 무거운 백팩을 메고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까지도 배는 계속 아팠다. 병원에서 나올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첫차가 다닐 때였지만 도저히 역까지 갈 힘이 없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침대에 누우니 긴장이 풀렸다. 네 시간 정도 그대로 쓰러져 잤고, 다시 일어나 죽을 먹고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자는 동안엔 몇몇 사람들에게 전화가 왔다. 그중에는 '망해서 행복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몸은 좀 어떻냐는 이야기였다. 스피커 폰이었는지 세 명이 동시에, 혹은 돌아가면서 말했는데, 대화 상대가 바뀌는 속도를 뇌가 따라가지 못했다.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이상한 소리를 하다 전화를 끊었다. 다시 눈을 뜨니 다섯 시였고, 그때는 몸은 무거웠지만 머리는 가뿐했다.
저녁엔 일이 있어 간단하게 나갈 채비를 했다. 집에 있을 땐 괜찮았는데 바깥에 나오니 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복통은 어제와 같았고, 바뀐 건 맹장이 안 터진 것이라는 사실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견딜만한 고통이 되었다.
낮에 쉬면 저녁엔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이 끝날 때쯤은 엎드려 있지 않고선 버티기 힘들 정도로 아파졌다. 이상하게도 집에 들어오니 복통이 사라져 스팀잇에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예전에 가까웠던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는 연락이었다. 나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물었고, 그렇진 않고 계절이 바뀌어 그런지 그냥 생각이 났다고 했다. 몇 번이나 연락을 받고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미뤘는데, 이번에도 미루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일 시간이 맞아 보기로 하고, 미안하지만 몸이 안 좋아 집 근처로 와줄 수 있냐 물었다. 흔쾌히 승낙해주어서 오랜만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내일은 일찍부터 일을 해야 하고, 그 사람도 만나야 한다. 내일이 마감인,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작업도 있다. 저녁엔 분명 일정이 있었는데, 당최 어떤 일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불안하다.
긴 하루였다. 푹 자고 일어나면 이 길었던 하루가 끔찍한 복통과 함께 꿈처럼 지나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