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깊은 새벽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피터(@peterchung)님이 지목한 너 꿈이 뭐니? 챌린지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며칠간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가, 챌린지의 의도를 생각해보았다. 그랬더니 오늘은 이 글을 꼭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오늘 스팀시티 응원가 발표 글이 올라왔고, 피터님의 글에선 내가 언급됐다. 끼리끼리 논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멀린(@mmerlin)님의 말에 의하면 이것 역시 작은 운명일 것이다.
한창 꿈 챌린지가 성행일 무렵, 내게는 그 챌린지가 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내가 꿈을 이뤘다고 느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꿈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 꿈은 판사였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렇게 말했을 때 부모님이 좋아하시길래 판사가 되기로 했다. 판사를 꿈꾸다 덜컥 뮤즈의 음악을 듣게 됐다. 그리곤 기타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락만 들었기 때문에, 기타를 선택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꼬꼬마 시절,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적어도 예수 정도로는 유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상하리만큼 과격한 음악과 속주에 매달렸다. 그 당시 내가 좋아했던 기타리스트는 잉베이 맘스틴, 임펠리테리였다. 주변에선 여자는 그런 기타리스트가 될 수 없다고 했고, 나도 몇 년간 연습해봤는데 잘 안 되길래 기타를 접었다.
패기로 가득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엔 밤을 새우며 음악을 들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자신하던 시기였다. 기타를 내려놓았지만, 음악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곡을 만들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타를 그만두기 위한 변명이었는진 모르겠지만, 곡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예수보다 유명해지고 싶던 여고생의 꿈은 급격히 소박해졌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
무척 유치하고 뻔하지만, 원래 유치한 데서 모든 게 시작된다.
겉멋처럼 시작했던 음악이었지만, 차츰 진지해졌다. 그리고 갈수록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몇 개의 일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내 꿈을 이뤘다고 느꼈던 때가 있다. 작은 카페에서 열린 소박한 공연이었는데, 내 곡을 들은 어떤 이가 눈물을 흘렸다. 감동을 받지 않으면 울 수 없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으로 나는 어릴 적 꿈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루게 되었다.
그 간단한 꿈을 이루게 되면서, 나는 더이상 꿈을 꾸지 않았다. 직업은 꿈이 될 수 없는데, 나는 자꾸 어떠한 직업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음악과 관련된 일을 많이 했지만,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늘 아쉽고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공연 레퍼토리는 가끔 촌스럽기도, 진부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내 연주나 곡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스팀잇을 시작한 그 시기가 내겐 운명 같다. 목적도 없이 달리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쉬던 때였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팀잇에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때는 글을 올리고 받게 되는 소수점 보상이 내가 걸 수 있는 유일한 기대였다.
보상을 바라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내 삶을 천천히 돌아보게 되었다. 긴 시간을 스팀잇과 함께했고, 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다시 음악을 하게 되었다.
주저리주저리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래서 지금 니 꿈이 뭐냐 물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평생 피아노와 함께하는 삶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긴 좀 민망하지만, 나는 가끔 음악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 눈물이 날 것 같을 때가 있다. 음악이 좋아 시작하게 되었지만, 음악을 통해 수많은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됐다.
아직도 나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대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아직 서툴고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음악을 이해하게 될수록 세상과 더욱 따뜻한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평생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는 것, 나의 삶과 내 음악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꿈이다.
꿈 챌린지 글이 우후죽순 올라올 때만 하더라도 스팀시티가 이런 구색을 갖추게 될지, 그래서 이렇게 빠르게 세상으로 나오게 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한 상상으로 남아있던 일이었다.
스팀시티가 걸어가는 길을 보면 가끔은 위태위태한 것도 같고, 그래서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큰길은 벗어나지 않고 제법 잘 걸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스팀 만 배, 스팀시티 이런 말들이 누군가에겐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친 거대한 영향력을 돌아보게 된다면 이 말들을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내가 꾸는 꿈과 스팀시티가 꾸는 꿈은 어딘가 동떨어져 보이지만 실은 같은 셈이다.
나는 내일 저녁 그간 공들여 만든 무용 공연을 한다. 오늘은 최종 리허설을 했고, 긴장한 나머지 어제는 밤을 샜다. 그래서 지금도 몹시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잘 준비했다는 생각에 괜시리 설레기도 한다. 사람들의 평가를 내심 기대하게 된다. 스팀시티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도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디가 됐든,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일 가까우면서도 먼 곳에 있겠지만, 진심을 다해 스팀시티가 내딛는 첫 발걸음이 행복하기를, 그래서 스팀시티가 모두와 조화를 이루는 따뜻한 하나의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