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생물학 - 생명, 경계에 서다(2)

a. 생명력(45페이지)

왜 물질은 생명체를 이룰 때와 암석을 이룰 때 그렇게 다르게 행동할까?

바로 이것이 생명의 중심에 있는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를 가장 먼저 해결해보고자 했던 이들 중에는 고대 그리스인들도 있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만한 무생물의 특성을 찾아냈다.

이를테면, 단단한 물체는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증기와 불은 위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원형 궤도를 따라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생명은 달랐다. 많은 동물이 땅에 떨어졌지만, 달릴 수도 있었다. 식물은 위를 향해서 자랐고, 새는 하늘을 날았다. 무엇이 생명체를 세상의 나머지 부분과 그렇게 다르도록 만든 것일까?

b. 초기의 양자생물학자들(73페이지)

1920년대에도 생명은 여전히 불가사의였다. 19세기의 생화학자들은 생명의 화학적 특성에 대한 기계론적 이해에서는 큰 발전을 이뤘지만, 많은 과학자가 생기론의 원리에 계속 집착하고 있었다.

이들은 생물학이 물리학과 화학으로 환원될 수 없고, 고유의 법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10여년 동안 새로운 부류의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유기체론자라고 알려진 이들은 생기론과 기계론의 개념을 모두 거부했다.

유기체론자들은 생명에는 신비스러운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원칙적으로 이 신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물리 법칙과 화학 법칙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기체론 운동의 가장 위대한 주창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폰 베르탈란피는 생물 발생 이론을 다룬 초기 논문 몇 편을 썼으며, 1928년에 저술한 "형태 발생에 관한 중요한 학설"에서는 생명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생물학 원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노버에서 나고 자란 요르단은 양자역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명인 막스 보른 밑에서 연구했다.

1925년 요르단과 보른은 "양자역학에 관하여"라는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1년 뒤, 요르단과 보른,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에 관하여 2"를 발표했다. 이듬해에 요르단은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와 함께 연구를 하였다.

1929년 즈음 두 사람은 양자역학이 생물학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파스쿠알 요르단은 로스토크 대학에 자리가 생겨 독일로 되돌아왔고, 그 후로도 2년 동안 보어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물리학과 생물학의 관계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마침내, 그들의 생각은 최초의 양자생물학 논문으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 논문은 요르단이 1932년 독일의 자연과학 잡지에 발표한 "생물학과 물리학의 근본적 문제와 양자역학"이었다.

요르단의 글에는 생명 현상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통찰이 있지만, 그의 생물학적 고찰은 점차 정치적이 되었고, 결국에는 나치 이데올로기에 동조했다.

심지어, 그는 한 사람의 독재적 지도자 또는 안내자라는 개념이 생명의 중심 원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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