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케빈으로부터 2] 사상의 차이와 불일치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사상의 차이와 불일치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S o u l  e s s a y   F r o m  K e v i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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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굶주림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되었는지 아나요? 김 선생님?” 그가 물었다.
 “조선 시대까지는 사람들이 주렸을 것 같습니다.”
 “이 선생님은?”
 “음, 일제 강점기까진 굶는 사람이 있었겠죠.”
 그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말했다.
 “아주 최근까지입니다. 우리가 굶주림에서 벗어난 것은 몇 십 년이 되지 않아요.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에 대한 성과는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교수였고, 마지막 말의 주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 교수님과는 대학원에서 만났다. 사회과 교육을 전공했고 그와는 정치학개론, 법 교육의 수업을 함께 했다. 날마다 철학 서적을 읽고, 운전할 땐 정치 팟 캐스트를 듣던 시절이라, 옳은 것과 그른 것, 사회 정의 등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였던 시기였다. 정치학개론 시간에 교수님의 말을 듣고 당시 나를 가득 채우고 있던 정의의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지금이 어느 땐데 독재 정권 옹호 발언이야?’

 언제나처럼 난 교수님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했고 한바탕 토론이 이어졌다. 대학원 수업은 학부 때와 달리 몇 명만 둘러 앉아 격이 없는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그때 수업 장소도 교수님의 연구실이었다. 우린 소파에 둘러 앉아 있었고, 토론을 펼치기엔 좋은 환경이었다. 우리의 토론은 생각의 간극을 좁힐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내 생각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좋았다. 그렇다. 그 시절의 난 토론과 논쟁을 즐겼다. 특히 보수적인 정치색을 띤 사람과는 내가 가진 사상에 묘한 우월감을 갖고 토론에 임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였다. 수업을 들으면서 이게 아니다 싶으면 교수님께 이의를 제기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교수님과 나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랐다. 하지만 강의 선택을 할 때 난 주저 없이 그의 강의를 선택하곤 했다.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그 교수님의 수업이 좋았다. 좁힐 수 없는 생각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교수님을 통해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지식을 전할 땐 유머러스했고, 나의 이의제기에 대해서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토론에 응해주었다.

 가끔 그는 자신의 고등학생 딸과 논쟁을 했던 얘길 해주었다. 진보적인 피가 끓는 그의 딸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논쟁적인 편지를 쓰기도 했단다. 딸과의 논쟁이 익숙해서일까. 그는 비슷한 생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과 몸을 낮춰 이야기할 줄 알았다. (물론 이런저런 평가들은 나의 관점과 기억의 부산물일 뿐이다. 교수님이나 다른 이들의 관점과 기억은 다를 지도 모른다.)

 대학원 수업에서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택시 안에서도, 심지어 같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그런 불일치로 인해 논쟁을 벌인다. 사상의 차이로 인한 토론은 지금도 세계 어디서든 일어난다. 재밌는 것은 그런 논쟁의 대화를 글로 옮기면 그것이 50년 전인 1968년의 대화인지 2018년의 것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이다.

 1968년이 배경이고, 미국 중산층 사회의 일원이었던 케빈 아놀드의 집에서도 이런 논쟁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사건은 대학생 누나의 남자 친구인 루이스가 집에 놀러온 것부터 시작된다. 루이스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에 반전을 외치던 대학생 히피족이다. 명문 프린스턴 대학 3학년생으로, 여러 방면에서 그 당시로는 급진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처음 대면한 케빈 앞에서 자유연애 사상을 드러냈다가 반감을 사고, 두 번째로 만난 케빈의 엄마에게도 당혹감을 안겨 준다.

루이스: 아놀드 부인 무슨 일을 하시나요?
엄마: 뭐라구?
루이스: 제 말은 직업이요.
엄마: 오, 그래, 맞아 직업… 아무것도, 내 말은, 난 가정주부야.
루이스: 확실히 아무것도 안하시는군요.
엄마: 안 하지. 네 말이 맞아. 가정주부도 때론 필요하지.
루이스: 그렇겠죠. 그 일에 만족하시나요?
엄마: 만족하냐구?
(중략)
루이스: 대학은 나오셨나요, 아놀드 부인?
엄마: 오, 그래, 난 대학에서 역사 전공이었지. 하지만 카렌의 아버지를 1학년 때 만났고 그래서 난 그만 뒀어.
루이스: 졸업 못한 걸 후회하세요?
엄마: 오, 아니.
루이스: 와우, 대단하시네요. 제 말은 많은 여성이 그들의 인생을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보내는 게 무의미 하단 걸 깨닫는데 말예요.

 루이스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케빈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

엄마: 우리 동네 아이 중 하나가 몇 주 전 베트남에서 죽었단다.
루이스: 오, 알아요. 카렌이 말해줬죠. 또 다른 의미 없는 죽음이군요.
아빠: 뭐라고 했지?
루이스: 제 말은 슬픈 일이란 거죠. 젊은이가 아무 이유 없이 죽어야 한다는 건.
아빠: 난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이가 자유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면…
루이스: 국가를 위한 죽음을 정의하는데 약간 문제가 있죠. 조직적으로 국민을 억누르는 행위에요.
아빠: 망할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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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래서 넌 내가 세뇌됐다고 생각하는 거냐, 루이스?
루이스: 아뇨, 아뇨, 들어보세요. 전 베트남에서의 미국 전쟁의 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저씨 눈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빠: 알겠군.
루이스: 그들이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아빠: 네가 대체 한국에 대해 뭘 알아! 난 한국에 있었고 거기서 수많은 전우를 잃었어.
카렌: 아빠, 그건 지금 말하는 주제와는 상관없는 거예요.
아빠: 그리고 그들은 세뇌된 게 아냐. 신념을 위해 싸우길 두려워 않는 용감한 사람들이었어. 싸우기 두렵다면 차라리 그렇게 말해라! 겁쟁이란 사실을 인정하란 말야!
루이스: 망할, 당신이 맞아요. 전 겁쟁이에요. 전 아저씨 친구들처럼 죽고 싶지 않다구요. 거기서 뭘 얻었다고 생각하시죠? 그 사람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들은 영혼마저 자유롭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이용당했던 거예요. 아저씨 친구들은 이용당한 거라구요.

 좀 극적이긴 하지만, 50년 전의 대화라고 구닥다리 취급하기엔 좀 애매하지 않은가. 지금 어느 집 부엌 식탁에서 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 아닌가. 세대별 가치의 불일치는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 왔다는 얘기다. 시대가 바뀌면 맹위를 떨치던 소니 카세트 플레이어도 MP3 플레이어로 바뀌는데, 사상의 세대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최신 기종처럼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있다.

 이런 사상의 차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면, 우린 사상의 차이와 불일치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케빈의 가족과 대화하는 루이스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필요한지 돌아볼 수 있다. 루이스는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가진 생각을 거침없이 주장했다.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존중이나 공감이 없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라도 있다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것이 국가의 실책이라는 생각을 가졌더라도, 거기서 전사한 사람이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다고 말할 순 없는 것이다.

 이는 진보 성향인 루이스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케빈의 이야기가 201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상대의 삶에 대한 공감이 없는 쪽은 보수적인 인물로 설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삶에 대한 ‘공감’을 잃는 순간, ‘꼰대’나 ‘되바라진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인양과 추모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세력을 그토록 성토했던 것은, 그들이 ‘보수’라서가 아니다. 다른 이의 슬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사상이 삶을 앞질러 버리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적이 되어 버린다. 사상은 결국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자 하는 각기 다른 방법론이다. 사상이 삶을 앞질러 버리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각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다만 치열하게 싸워야 할 영역은 있다. 사상이 수많은 삶을 좌우하는 정책 결정의 자리에선,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피가 튀기도록 논쟁하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도 삶이 앞자리에 있어야 한다.

 다시 대학원에서 만났던 교수님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교수님과의 토론들 이후에 난 그간 변화를 용납할 것 같지 않던 내 생각의 일부가 조금 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서슬 퍼런 유신 정권동안 더 이상 굶주리지 않고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 때문에 수많은 인권 유린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통치자를 드높이고 찬양까지 하는 현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억울하게 죽고, 자유를 잃는 문제보다 그게 중요하단 말인가! 하고 분개해왔었다. 하지만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점은, 굶주림이 무엇인지 알고 직접 겪은 세대에겐,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요, ‘죽고 사는 문제’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 비로소 인권을 보호받는 길이라고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겐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이해의 단초가 바로 내가 얻은 가장 큰 결실이다. 똑같은 논쟁의 자리에서 내 견해는 변함없겠지만, 최소한 상대가 어떤 근거로 그 같은 주장을 하는지 정도는 감안하고 말할 것이다.

 케빈의 가족과 만난 루이스처럼 “당신은 인권이나 자유에 대해서 아무런 개념이 없군요! 국가의 억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한 줄 압니까!” 라고 말하는 대신, “실제 끼니를 굶고 걱정했던 시대를 살아온 분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라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단단한 불일치의 벽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다. 이것이 삶을 사상의 앞에 둘 때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관점이나 사상도 개인의 삶을 무시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규정지어선 안 된다. 그것이 범법이 아닌 이상 말이다.

 어떤 관점을 갖고 논쟁을 하든, 좀 더 권위를 가진 쪽이 더 많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그 교수님께 배운 점이다. 내가 교수님의 강의를 3개나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열두 살의 케빈은 아빠와 루이스의 논쟁을 들으며 혼란에 빠진다. 아빠가 이기길 바랐지만, 결국 누구도 이길 수 없는 토론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스가 징집영장을 흔들며 당신이 이런 생각이라면 훗날의 희생자는 당신의 아들 차례일 거라고 말했을 때 아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딜레마가 그를 꽁꽁 묶어버렸던 것이다.

 케빈은 잠자리에 들면서 일상에서 서로 적으로 삼고 논쟁을 일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를 나레이션을 통해 암시한다. 케빈은 그렇게 또 이해하지 못할 어른의 세계를 슬쩍 엿보았던 것이다.

나도 언젠간 성인이 되겠지만 난 아직도 어른이 된다는 걸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늦은 밤, 잠에 빠져들 때면 그런 사상과 불일치는 점점 사라져 가고 그리고 우린 모두 그저 사람들과 함께 남겨질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때도 늘 그래왔듯 변한 게 없을 테고 항상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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