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 도시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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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솝우화에서 읽었지만
그에 대한 합리적 해석만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마치 숱한 사상가의 이론이 글자로 남은것처럼

지난주 휴가에서 돌아오는길에
말린 옥수수를 두자루 사와서 까고 있습니다.
예전엔 물을 받아 어린이를 목욕시키던
겨울을 앞두고 김장양념을 버무리는 이 고무대야에
옥수수자루를 망채로 넣고 알을 뜯고 있습니다.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밖을 내려다보며 손을 놀리다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차분히 머리속을 스쳐갑니다.
이 옥수수를 팔았던 부부는 뻥튀기를 해먹으려로 말려놨다고 하더군요.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는 못생긴 옥수수 두자루
그들의 뻥튀기 먹는 즐거움을 돈 몇푼에 뺏은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가 시골일까요?
행정구역상 '시'가 아닌곳이 시골일까요?
고개를 돌리면 사방에 수풀이보이는곳이 시골일까요?
아니면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발에 채이는것이 흙, 돌인곳일까요?

어쩌면 시골은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시골의 삶이 사라지는것 처럼요.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이제 종말을 향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참 많이도 변화시킨거 같습니다.

처음엔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농장에서 쫓아내고
다음엔 생존을위해 기계처럼 일하게 만들고
다음엔 원초적 욕망이 자본주의적 가치만을 바라보게 만들더니
어느새 유한계급의 삶을 보편적 가치로 바꿔놓은거 같습니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야하고
유럽여행을 가야하고

생산력의 발전으로 노동의 결과물이 풍성해지는만큼
채울수 없는 욕망의 거품도 커져만 갑니다.

내가 아닌 타인이 이겨야할 대상이 되고

나의 욕망은 시대정신의 구현처럼 변해갑니다.

내 정신은 멀찍이 뒤로 물러설줄 모릅니다.

옥수수를 덖어서 일년내내 보관하면서
몇알씩 넣어서 물을 끓입니다.
정수기가 아닌 수돗물을 끓여서 먹는 재래식입니다.
상수원의 오염이 더해가는 세상에
수돗물을 끓여먹는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닌거 같습니다.
그로인해 오염물질을 섭취하고
정수기를 사용하면 걸리지 않을 병에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삭제되는 '시골'의 하나입니다.
'시골의 삶'의 하나입니다.
행동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고 하지요.

사회체제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자연과의 경쟁과 순응이 삶이었던 '시골'
남보다 더 큰집, 더 큰 자동차, 더 멋진 여행이 아니라
더 잘익은 과일, 벼, 옥수수를 바라보며 행복해지는 삶

농사를 짓지 않아서 느끼는 것인지
농사를 짓지 않아서 더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겨야 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뿐이라는 것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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