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The Before Trilogy

한 여름 밤의 꿈, Before Sunrise

내게 인생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가 단연 1순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로맨스 영화 중에서. 내가 아는 모든 영화 중 최고의 영화를 단 하나면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로맨스와 액션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맨스는 로맨스고, 액션은 액션이다. 

아무튼 내가 아는 로맨스 영화 중 최고의 영화가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라는 것은 분명하다.비포 선라이즈를 시작으로,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까지 비포 트릴로지라고 불리우는 세 작품 중에서 유독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하는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라면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대의 청춘 남녀, 우연한 만남,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 촉박한 시간, 불투명한 미래. ‘설레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비포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끊임 없는 대화’인데, 세 개의 비포 시리즈 중에서도 비포 선라이즈에 가장 잘 나타나며, 대사 하나 하나에 청춘의 떨림과 위트가 묻어난다. 

어떻게 이 많은 대사를 외웠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대사와 상황 중에서 많은 이들이 최고로 꼽는 장면이라면 ‘카페에서 전화를 하는 듯 대화 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레코드 샵’이 최고의 장면이라고 본다.

‘캐스 블룸(Kath Bloom)’의 LP를 플레이어에 물리고, ‘Come Here’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셀린(Julie Delpy)과 제시(Ethan Hawke)는 벽에 바짝 기대어 간지러운 눈빛만 교환한다. 서로에게 호감은 있지만, 오늘이 지나면 헤어져야 한다는 배경과 더불어, 너무나도 꿈같은 상황에 본인들도 긴가 민가 하는 듯한 느낌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Before Sunset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가 20대의 풋풋하고 조심스러운 첫만남을 그렸다면, ‘비포 선셋(Before Sunset)’은, 어느 정도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여러모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생긴 ‘어른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비포 선라이즈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포 선셋에서 가장 진하게 다가왔던 대사를 안 짚고 넘어갈 수가 없다.안타까운 엇갈림 이후 십수년만에 다시 만난 셀린과 제시는, 유람선 위에서 각자의 삶을 통해 내공이 쌓인 눈빛을 교환한다. 그리고, 제시가 말한다.

“우리는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어”

이미 서로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어와버렸고, 서로를 선택했을 때의 리스크가 결코 작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또 다시 갈등한다. 그리고, 셀린이 ‘A Waltz For A Night’을 부르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디에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 Before Midnight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던 한 여름 밤의 꿈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거쳐, 마침내 ‘진짜 현실의 세계’에 들어선다.

그리고, 셀린과 제시도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권태기라는 위기를 겪게 된다. 셀린은, 젊은 날의 꿈과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셀린에게 제시가 다가간다. 그리고, 셀린에게 이야기한다.

“이게 진짜 삶이야.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짜 삶이라고(It’s real life. It’s not perfect, but it’s real)”

어쩌면, 세상에는 제시보다 셀린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과거 혹은 이상만을 바라보며, 불합리한 현실에 불만족스러워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불합리한 현실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삶이며, 함께 감당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제시는 말하고 있다.

2020년 새해가 밝았다. 가혹한 현실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2019년이었다. 그들 하나 하나가 셀린이었다고 생각하며, 2020년에는 나부터 제시가 되어 우울감에 빠져있을 셀린을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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