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와 루트박스의 작은 미디어사

  1. 서문

이 글은 쉐어웨어에서 시작해 오버워치로 끝난다. 보다 정확한 글을 쓰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기운이 많지는 않았다. 정확한 글은 랩탑과 책상만 가지고는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랩탑과 책상, 와이파이, 커피 몇 잔과 함께 썼다. 개인적인 흥미, 동기와 함께. 글이 가지고 있는 한계들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는 패키지 형태로 판매하는 콘솔 게임 디스크나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의 비디오게임들을 선호한다. 그래서 플레이 경험이 없지는 않지만 F2P(Free-to-Play) 모델에 근거하는 게임들, 특히 모바일 환경에서의 플레이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내가 플레이해왔던 게임들은 대체로 한 번의 지불로 완결되는 구조를 가진 게임들이었다. 그런 게임들의 플레이 경험과 관습은 나를 F2P 게임이나 패키지 게임 내부에서의 마이크로트랜잭션(Microtransaction)에도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SNS로 접하게 되는 가챠 열기는 나에게 별세계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자신의 오락과 즐거움을 산업에 외주를 주고 있는 자의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저변을 지니게 된 가챠와 루트박스 모델 그리고 이들이 비디오게임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과 모델을 가진 비디오게임들이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물음이다. 물론 이 글에서 나는 이 물음에 대해 답을 찾고 있지는 못하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수순으로 가챠와 루트박스가 어떻게 비디오게임의 세계 안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

  1. 쉐어웨어에서 프리-미엄으로

태초에 테드 넬슨이 있었다.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사이버히피 사회학도는 월드와이드웹 개념이 등장하기 한참 전에 마이크로페이먼트(micropayment)라는 개념도 발명했는데 이 개념은 웹페이지에 업로드 되어 있는 수많은 자산들의 저작권을 미시적 수준에서 결제할 수 있게 하는 이상을 품고 있었다. 한 때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이 그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HTML에 마이크로페이먼트를 위한 표준 문법을 도입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HTML에서 마이크로페이먼트의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마이크로페이먼트는 그것을 사용하는 마이크로트랜잭션이라는 비즈니스 모델 안에서 살아남게 된다. 예컨대 오늘날 프리-미엄, F2P를 기본으로 인-앱 구매(In-App purchase)를 유도하는 수많은 응용 어플리케이션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이크로페이먼트는 어떻게 월드와이드웹이 아닌 응용 소프트웨어의 세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일까? 오늘날의 마이크로트랜잭션 모델은 소프트웨어라는 재화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물질적 성격과 관계한다. 그성격은 소프트웨어는 배급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랜딩과 마케팅 등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의 ‘비물질성’은 소프트웨어를 간단히 컴퓨터와 통신의 하부구조가 되는 물리적 인프라스트럭처를 통해 전송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램적 성격은 원격으로 소프트웨어 제작자들이 소프트웨어 내부에서 광고를 렌더링하거나 끌 수 있게 했고,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의 작동 자체를 차단하는 것도 가능했다.

때문에 소프트웨어에만 적용 가능한 비즈니스 전략들이 있었고 쉐어웨어(share-ware)가 실험되던 시대가 있었다. 쉐어웨어 비즈니스 모델은 위와 같은 소프트웨어의 비물질성을 통해 빠르게 사용자 베이스(user base)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단 사용자가 쉐어웨어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컴퓨팅 플랫폼에 다운받아 설치하고 나면 사용자는 소프트웨어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지만 광고를 봐야하거나 제한된 시간 동안만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있거나 제한된 기능만을 사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사용하던 소프트웨어를 제거하기 보다는 꾸역꾸역 광고를 보거나 과금을 하게 된다. 무료 배급을 통해 확보된 사용자 베이스는 쉐어웨어 모델의 핵심이다.

쉐어웨어는 애드웨어(adware), 크리플웨어(crippleware), 트라이얼웨어(trialware), 도네이션웨어(donationware), 내그웨어(nagware), 프리-미엄(Free-mium) 등 유형으로 나뉜다. 우리가 주목할 유형은 프리-미엄이다. 프리-미엄은 1980년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처음 등장한 모델로 쉐어웨어의 일반적 유형과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사용자 베이스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이 경우 별도의 수익창출원이 필요하게 된다. 프리-미엄 모델이 비디오게임 산업에 적용되면서 등장한 용어가 F2P(Free-to-Play)이다. F2P는 서비스로서 플레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추가적 과금을 유도하는 모델이다. 플레이어 베이스의 공격적 확보와 폭넓은 플레이어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수익 창출.

  1. 웹과 F2P: 페이스북-징가 연합체

F2P 모델이 언제부터 비디오게임 산업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영미권 위키피디아에서 최초의 F2P 게임으로 여겨지는 게임은 Furcadia (1996), 넥슨의 <퀴즈퀴즈>(1999) 등이다. 이들은 클라이언트를 PC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구동되었고 후자는 부분유료화를 도입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게임은 Achaea: Dreams of Divine Lands (1997)로 Achaea는 웹 자체를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머드게임이어서 플랫폼 독립적인 구동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클라이언트를 설치할 필요조차 없었다. 웹 기반의 게임은 이후 징가(Zynga)로 대표될 기업이 내놓을 소셜 웹 게임들의 등장을 예고한다. 물론 2007년 이후 징가의 성공을 위해서는 페이스북과 매크로미디어 플래시가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부상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페이스북과 플래시가 유사-웹표준으로 자리잡게 될 2007년까지 F2P 모델은 아직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7년 징가의 비즈니스 모델은 비디오게임 산업에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게 된다. 징가의 FarmVille (2009)은 페이스북 API를 기반으로 프로필 등록 과정을 제거해버렸을 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사용자 베이스를 타깃으로 삼으면서 기존에 ‘게이머’로 여겨지지 않았던 캐주얼 게이머들을 비디오게임 생태계로 끌어들였다.[i] FarmVille은 마이크로트랜잭션을 사용해 농작물의 수확을 가속하는 것 같은, 인-게임 자원의 현금 판매를 구현하고 있었다. 징가의 성공은 엄청난 것이었는데, 2011년 징가는 한 분기에 2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2000년대 후반 징가의 소셜 게임들이 거둔 성공은 서구의 개발자들에게 F2P-마이크로트랜잭션 모델의 매력을 널리 알린 한 가지 사례로 추정된다.

  1. 가챠: 일본에서의 모바일 변이와 TCG의 재매개

징가의 성공은 2007년 아이폰 등장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한 스마트폰 생태계의 확대와 궤를 같이 한다.[ii] 인-앱 구매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소셜 게임은 일본에서 소샤게(ソーシャゲ; ソーシャルゲーム)의 형태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釣り★スタ(쓰리★스타)>(2007)을 시작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소샤게 시장은 친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한 일종의 소셜 네트워크로서 게임을 서비스하기 시작한다. <怪盗ロワイヤル(괴도로얄)>(2009)이 친구들과의 대전을 모바일 소샤게에 도입하고 이후 코나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하고 Gree가 유통한 <ドラゴンコレクション(드래곤컬렉션)>(2010)이 등장한다.

2010년의 드래곤컬렉션은 TCG(Trading Card Game)인 유희왕을 재매개하고 있는 점에서 오늘날 가챠의 한 기원이다.[iii] 유희왕은 플레이어가 난수화 된 카드가 들어있는 부스터팩을 구매해서 자신의 인-게임 플레이 자원을 충당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카드게임의 재매개는 더 이른 사례인 EA의 UEFA Champions League 2006–2007 (2007)를 예로 들 수도 있다. EA는 그때부터 이미 인-게임 마이크로트랜잭션의 명가였다. 하지만 스마트폰 모바일 환경에서 카드게임의 재매개가 일어난 사례를 꼽을 때는 드래곤컬렉션을 말하게 된다. 드래곤컬렉션 이후 등장한 가챠 게임들인 <アイドルマスター シンデレラガールズ(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걸즈)>(2011), Puzzle & Dragon (2012), < 艦隊これくしょん(함대 컬렉션)>(2013) 등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그중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걸즈는 월간 1천만엔의 수익을 올렸고, 퍼즐&드래곤은 1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이들 게임에서 카드게임의 흔적은 일러스트가 그려진 카드 형태의 레이아웃 뿐이지만 TCG의 카드 판매 논리는 디지털 컴퓨팅 환경을 경유해 재매개되면서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임을 증명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가챠의 잠재력은 신용/체크카드와 직접 연결된 모바일 환경의 마이크로페이먼트 메커니즘과도 관계하는 것이다. 이후 한국에는 <神撃のバハムート(바하무트: 배틀 오브 레전드)>(2012), <拡散性ミリオンアーサー(확산성 밀리언 아서)>(2012)가 수입되며 가챠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게 된다.

적절한 용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이 절에서 가챠로 통칭하고 있는 TCG 기반 모델의 특징은 인-게임의 외형, 코스메틱, 스킨에 머무르는 요소 뿐 아니라 기능적 요소 혹은 인-게임 자원을 루팅(looting)하기 위해 확률기계와 연결된 마이크로페이먼트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TCG 모델에 대한 논란은 초기 카드 수집 게임의 예인 90년대 미국의 야구 카드나 포켓몬 카드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iv] 가챠로 불리지 않는 마찬가지로 TCG 기반의 모델링을 수행하는 FIFA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의 양상을 보인다.

  1. 루트박스와 FPS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외형의 변형을 중심으로 한 루트박스가 FPS 장르를 중심으로 유통되기 시작한다. 인-게임 자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향의 과금으로서 말이다. 플레이어 간의 전투가 주가 되고 플레이어의 실력이 중시되는 FPS 장르의 특성 때문이었을까? 여하간 밸브(Valve Co.)가 서구에서 루트박스의 도입에 앞장선다. 2010년 전면 무료화를 선언한 Team Fortress 2 (2007)를 시작으로 Counter Strike: Global Offensive (2012)에 차례대로 루트박스가 도입된다. CS: GO의 웨폰케이스 시리즈는 자체적으로 마련된 거래소를 통해 거래되기도 하며 이제 하나의 시장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거래소까지는 아니지만, 이제 이들 모델은 Overwatch (2017)과 Apex Legend (2019)같은 FPS 장르 기반 게임들에 흔히 채용되고 있다.

  1. 맺음말

이 글은 나의 관심사에 집중해 가챠가 실세계의 어떤 계기들을 비디오게임의 세계 안으로 모델링하고 시뮬레이션 했는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이 있었다. 때문에 이 글은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다뤄야 할 부분들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경제적 변수들. 비디오게임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 인구통계학적 변수들(예컨대 가족 구조 같은)과 산업 구조의 변화, 기술 혁신과 비디오게임 플레이어 공동체의 요구에 의해 변형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되었는가? 다시 말해 패키지와 콘솔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모바일과 마이크로트랜잭션, 특히 플레이어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가챠에 의존하는 모델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 고려할 수 있는 변수는 차고 넘친다. 가장 쉽게 변수들을 한정할 방법은 비디오게임 산업의 종사자를 통해 그가 비디오게임의 비즈니스 모델과 게임 디자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 써 온 변수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선 폭넓은 척도의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인상이다. 그러나 책상머리에 앉아서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추가적인 탐구를 용이하기 하기 위한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가챠의 언어적 기원을 지적할 목소리들에 응답할 수 있겠다. 가챠는 가챠폰의 줄임말이고 때문에 가챠폰을 재매개한 초기의 사례로 2004년의 일본 서비스 판본의 메이플스토리를 이야기해야겠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모은 자료들과 그것들의 출처가 가진 바이어스 때문에 자료들이 형성한 지형 안에서 메이플스토리가 국내와 해외에서 어떤 영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기 어려웠다. 아마도 가챠가 확률기계에 마이크로페이먼트를 물려놓은 비즈니스 모델 일반의 이름이 된 것은 가챠폰과 TCG 카드 부스터의 논리를 쉽게 짝지을 수 있었던 일본이라는 문화적 환경 때문인 것 같다. 피곤한 일이지만 메이플스토리가 일본 혹은 국내 시장에서 가챠에 미친 영향은 비디오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실증되어야 한다.

[i] https://www.adweek.com/digital/your-mom-farmville/, 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11/may/13/farmville-lady-gaga-gamers-facebook, https://gigaom.com/2010/02/17/average-social-gamer-is-a-43-year-old-woman/, http://www.datagenetics.com/blog/december12010/, https://learningsolutionsmag.com/articles/1592/what-farmville-can-teach-us-about-social-gamification 참조
[ii] https://www.techradar.com/news/gaming/from-floppy-disks-to-freeware-the-history-of-f2p-gaming-1248467 참조
[iii] 「なぜウケる? なぜハマる? GREE vs DeNA」『日経トレンディ』第337号、日経BP、2012年5月、 40–44頁。
[iv] https://www.pcgamer.com/the-evolution-of-loot-boxe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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