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무언가를 배울 땐 잠시 한 걸음 멀어져 다양한 것들을 볼 필요가 있다 - 채사장 작가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으며...

나는 공부를 정말 못한다. 중고등학교 때도 항상 어중간한 성적을 받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뭔가 공부가 잘 되어간다고 느낀적이 없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받았던 학습전략검사에서 중학교 수준의 학습 능력을 나타낸다고까지 나왔을 정도니 말이다.

공부는 잘 하지 못해도, 나름 이해가 필요한 과목에서는 재미를 느끼고 꽤 잘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논리학 수업이나 철학 수업과 같이, 단순한 지식의 암기보단 논리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답을 낼 수 있는 그런 과목들 말이다. 이런 점에서 내가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크나큰 실수일지도 모르겠다 ^^;

어찌 되었든, 운이 좋게도 나는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기계공학이나 산업공학과 같이 다른 전공을 가진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꾀나 많았다(@jihangmoogan@lab106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사실 나의 이런 다양한 관심사는 개인적으로 자랑스러운 부분이자 컴플렉스였다. 어렸을 때 부터 뭐 하나 잘하지 못하고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실증이나 다른 더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헤맸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들어오고 잠시 방황하는 동안, "채사장"이라는 사람을 팟캐스트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 채사장이라는 사람이 너무 좋으면서도 질투가 났다. 내가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모습을 이미 거의 완성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와 이과, 예체능을 넘나다는 넓고 깊은 박학다식함, 틈새를 파고드는 유머감각(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 사람들의 생각을 아울러 새로운 관념을 도출해내는 능력, 글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종국엔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쓰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하지만 동시대에 이런 사람을 만났다는게 행운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이 사람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헀고, 그렇다면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이 사람이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문이 너무 길어졌다. 앞에서 언급햇던 것처럼, 나의 컴플렉스는 한 가지를 깊게 파지 못하고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 지식의 "깊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를 채사장을 보며 내가 살아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방금은 채사장의 신간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몇페이지 읽고나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해나가야할지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이 글은 책의 첫번째 챕터인 "별에 관하여-모든 지식은 언제나 만난다"라는 부분에서 발췌한 것이다. 채사장의 재수시절 재미없는 사회문화 강사님이 뜬금없이 꺼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 단락을 읽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이야기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금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인지심리학 수업 때 배웠던 형태학습에 대한 이론들이 떠오른다. idea 이론과 examplar 이론이 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지금 고양이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라. 어떤 고양이가 떠오르는가?

idea 이론에 따르면, 이 때 우리의 머릿속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고양이가 나타난다. 이 고양이는 우리가 여태까지 봐왔던 모든 고양이들의 속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idea에 가까운 한 마리의 평균적인 고양이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

examplar이론에 따르면, 이 때 우리의 머릿속엔 평소 동네에서 자주 보았던 치즈냥이가 떠오를 것이다.

exapmlar이론에선 우리가 어떤 형태를 떠올릴 때, 그 형태의 평균적인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경험했던 대표성 있는 물체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이론 중 무엇이 더 좋은 이론인지에 대해선 기억이 안난다. 상황에 따라 어떤 걸 떠올리느냐에 따라 달랐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idea 이론이 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어떤 현상을 파악하고자 할 때, 그것의 외면적인 것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이유, 어떤 현상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함께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그 현상의 특성들을 관통하는 어떤 핵심적인 원리가 있는지 알아봐야만 "지식"으로서 체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개인적인 사레로, 나는 사회학에 대한 지식과 임상심리학의 지식을 결합하여 앞으로 좀 더 사회적인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사회학은 굉장히 거시적인 학문이고, 임상심리학은 굉장히 미시적인 학문인데, 분명 이 두 학문이 결합해 일으킬 수 있는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무언가 이뤄내진 못했지만,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해 극도의 전문성을 끌어올리는 사람들도 분명 필요하지만, 나처럼 좀 더 간학문적이고 다양한 지식들과 상호 연결되는 그런 활동들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앞으로도 나는 별 모양의 지식을 추구하며 삼각형과 원, 그리고 사각형을 더욱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말하듯,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잠시 한걸음 떨어져 그 주변의 다른 것들을 둘러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긴 글을 마치며, 이 글을 쓰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햇다는 것은 안비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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