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적

오늘 하루 그간 제가 다른 분들의 글에 달았던 댓글을 봤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간 제 마음이 그려왔던 궤적이 보여지더군요. 이쯤에서 한번 정리를 해보고싶은 마음이 듭니다.

전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일하는 정신과의사입니다. 매일 삶의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분들 덕택에 아이들 키우고 아내와 제가 삽니다. 그 분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과 제 삶이 일정 부분 다르지 않으니 제 것을 떨어져서 바라보게도 되고 그 분들이 발휘하시는 지혜에 탄복하기도 합니다. 감사하고 송구스럽지요.

학자가 아니라는 말로 면피가 될 수 없을지라도 분명한 것은 현상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습니다. 이럴 때 저희끼린 '임상가'란 근사한 말로 서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으로 이 곳에 오게되었습니다. 아직 이정표는 없더군요. 얼리 어댑터도 아닐 뿐더러 기계치인 제가 우연히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얘기를 듣고 번역된 관련 서적 몇 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란 것을 처음 알고 한 달을 밤을 새운 끝에 모니터에 찍혀가던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텍스트를 봤었지요. 그때의 놀라움과 기쁨이란! 블록체인 관련 서적을 읽을 때의 감흥이 그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때는 인터넷이 가져올 변화를 눈꼽만큼도 몰랐었습니다. 그저 호기심밖에는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갈증은 코인관련 뉴스사이트로, 레딧으로, 그러다 스팀잇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그러던 중 kr 태그를 알게 되었고 그곳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의 말로 이런 고품격의 글을 읽게 될 줄이야.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넘어 경제의 흐름, 투자 자세, 심지어 예술과 인문까지.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본래의 제 관심으로 돌아옴도 감지합니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글들을 보게되면서입니다. 물론 그분들의 글에서 느낀 깊은 통찰과 혜안 덕입니다.

창작에 대한 보상, 그 보상의 적절함에 대한 의견, 현실이란 삶의 팍팍함, 그 팍팍함의 이유,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 보다 납득 가능한 세상의 모습 등, 두달 남짓한 시간동안 이런 저런 모습을 봤습니다. 시간이 모자라기도하고 관심이 편협하기도 하며 과문한 탓에 결국 한 부분만 봤을 겁니다.

두 개의 현이 함께 울리면서 만들어내는 완벽한 조화라고 할까요. 고대하던 기다림과 만난 벅참이라고 할까요. 글을 보면서 느꼈던 제 기분입니다. 영화 '접속'에서처럼, 미지의 누구지만 그 끌림만큼은 어떤 명작을 읽을 때 못지 않습니다. 행복한 글 읽기입니다.

제 과문함을 탓하면서도 '독서백편 의자현'이라 우기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읽다보면 뜻이 통해질 것이란 막연한 믿음입니다. 매우 주관적이지만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제 관심이 감당할 수 없이 확장할 때는 제목부터 읽을 것들을 가립니다. 부족한 시간은 제 몫이니까요. 처음엔 댓글이나마 성의껏 달자고 마음 먹었지만 그마저도 버겁습니다.

스팀잇도 조금씩 배워갑니다. 정성껏 읽다가 용기를 내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마저도 어쨌든 제 글이니 용기가 필요하더군요. 관심을 보여주신 덕에 힘을 내서 대담해집니다. 보팅도 하고 리스팀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알았습니다. 제 보팅이 보잘 것 없음도 알았고 그 뒤로는 지갑을 확인하게 되더군요. 심지어 요즘은 다른 분 지갑을 훔쳐보기까지 합니다.

용기를 내서 인사 글을 올리고 두번째 글도 올려봤습니다. 눈물나도록 감사한 댓글도 봤습니다. 더 이상 호응 없음에 허탈함도 느낍니다. 짐작컨대 많은 분들이 느꼈던 그 기분인 모양입니다. 행복한 글 읽기로 시작한 것인데 제 기분이 생뚱맞습니다.

두달 남짓한 기간 뉴비가 걸어온 궤적입니다. 다가올 시간에 너무 의욕이 앞서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다간 지칠테니까요. 더불어 스팀잇이 더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제게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