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look very pretty in the dress

아침에 일어나 얼마 안돼서 닥터에게 답장이 왔다.

I like it. You look very pretty in the dress.

감사합니다~~~~아이고 기분 좋아라! ㅎㅎㅎㅎㅎ 대화를 이어가야해서 물어봤다. 나도 너 사진 보고 싶어!
그가 사진을 보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휴대폰 아직 새로 안 샀다는데. 근데 휴대폰을 안 샀다는 사람이 어떻게 페북에 자주 로그인하지? 메신저에 언제 온라인었는지 기록이 뜨는 걸 닥터는 모르는걸까? 하하하하 이 모든 것은 미스테리.

어.쨋.든. 그를 믿어주기로 했으니 속는 셈 치고 믿을 수 밖에. 나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는데 거의 하루가 끝나갈 쯤 쇼킹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를 살짝 스토킹한 보온병남이 나와 같은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싶다는 기획서를 제출했다는 소식. 와...진짜 난 뭘 해도 이렇게 시트콤같은 일들이 생기는지. 보온병남이 나를 스토킹하기 위해서 기획서를 낸건 아니고 그도 나름 큰 HR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싶어서 기획서를 썼다. 그는 아마 나보다 훨씬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오피스에 여러 여자한테 들이대면서 같은 선물을 뿌려대는 인간이 나 대신 그 컨퍼런스에 참석한다는건 말도 안돼.

솔직히 난 8할정도 닥터를 만나기 위해서 기획서를 썼다. 연수주제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직장내 양성평등 추진. 양성평등이라는 주제는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직장내 이상한 젠더구조로 인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원에서는 육아휴직제도의 활용도의 대한 논문을 썼었다. 한국사회 곳곳의 가부장적 문화 (학교, 교회, 회사, 가정)는 날 분노케 했고 20대 중반에는 그 분노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뉴욕에 있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시아여성을 보호하는 여성단체에서 인터뷰를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만 32살인 지금 난 몇번 만나지도 않은 남자가 you look very pretty in the dress 한마디 해줬다고 매우 기뻐하는 자존심도 없는 그런 여자이다. 한 때 정말 뜨겁게 생각하던 주제도 이 남자를 보러가기 위한 수단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뭐가 날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일까? 그건 아마 내가 깨달아서인 것 같다. 양성평등이라는 주제에 대해 아무리 뜨겁게 생각을 해도 그 주제가 날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걸.

결혼이 날 행복하게 해 줄 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다.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고 싶고 그도 나를 신뢰해 줬으면 좋겠다.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천천히 함께 만들어 나가는 사랑을 해 보고 싶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보다 밝고 나의 아이들이 기댈 수 있고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Hey Doc, so can I trus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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