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담담하게 1

'시간'을 도시의 모습으로 만들면 아마 알레포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강의 끝자락에 만들어진 삼각주처럼 시간과 함께 흘러간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곳. 알레포의 시간은 박제된 채로 유리관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에, 돌바닥 사이사이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리고 시간 속에, 아주 오래된 것들과 여전히 뒤엉켜 살아가는 알레포의 사람들이 있다. '오래되었다'라는 말은 여전히 부족하다. 알레포의 시간을 설명하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시간의 도시 알레포'는 이제 없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흩어지던 길바닥의 돌들은 부서졌고, 까맣게 기름때가 탄 담벼락은 무너졌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앞다투어 도시를 떠났다. 숨을 들이마시면 느껴지던 쌓인 시간의 냄새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5년이 지났지만, 비극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타는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시리아의 시간 속을 걷고 있던 내 모습이 점차 희미해진다. 조급한 마음에 시리아에서의 시간을 더듬어 글을 써보려 몇 번이나 결심하지만, 번번이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게 된다. 그 시간을 떠올리며 '참 좋았지' 해도 되는 것일까 싶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라든가, 깊은 슬픔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감정은 아니다. 민망함. 그래, 민망함이다.

나는 여러모로 제법 운이 좋았다. 중국 정부가 개인의 티베트 자유 여행을 금지하기 직전에 티베트를 여행했고, 인도 델리의 파키스탄 영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하면 바로 다음 날 비자를 받을 수 있던 시기에 파키스탄을 여행했다. 내가 시리아를 찾았던 해는 그곳에서 내전이 일어나기 2년 전이었다.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시리아와 시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입을 모아 이야기하던 그런 때였다. 이런 것들도 행운이라면 행운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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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po, syria,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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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po, syria, 2009

알레포에서는 밤마다 잠을 설쳤다. 꼬박 밤을 새우게 되는 날에는 창밖으로 알레포 구시가지의 검은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나란히 선 성냥갑 같은 빌딩 몇 채를 제외하고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이 제법 지평선 같았다. 그다지 근사한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알레포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되었다.

아침을 맞고 나서야 몇 시간 눈을 붙이고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밖으로 나와 해바라기 씨를 한 봉지 샀다. 해바라기 씨를 까먹다 보면 오로지 입술과 앞니와 혀의 감각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그 손톱 크기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해바라기 씨를 입안에 넣는 일에만 오로지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입에 들어오는 것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손톱으로 무의미한 씨름을 하던 나에게 2초에 한 알씩 해바라기 씨를 까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터키 사람들이었다. 이 방법을 터득하고는 그 맛이 아니라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행위 자체에 어느덧 중독된 나를 발견했다. 조막만 한 야자수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봉지 안에 든 해바라기 씨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전부 까먹어 버렸다. 과장이 아니라 그러고 나면 정말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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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po, syria, 2009

해바라기 씨 한 봉지를 정복하고 더위에 저항하려는 것을 포기한 채 공기 중에 몸을 맡기고 그저 걸었다. 시리아 사람들이 곁을 스치며 내뱉는 '재키 찬', '칭챙총' 등의 말들은 이제 '헬로'와 같은 인사말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조차도 조용히 '칭챙총'이라고 읊조리고 지나갈 정도였으니. 가끔 '소서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당시에 중동에서 '주몽'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그들에겐 나, 재키 찬, 소서노 모두 다 똑같이 찢어진 눈을 가진 사람들. 커피 냄새가 흘러나오는 카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가게 안을 잠시 들여다보는데 안에서 일하고 있던 점원이 냅다 달려 나왔다.

"헬로. 헬로. 들어와. 들어와."

시리아 사람들이 마시는 터키쉬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터키를 여행했을 때도 마시지 않았던 터키쉬 커피를 시리아 사람들은 자꾸만 건네곤 했다. 차라리 차를 준다면 즐겁게 마실 텐데 터키쉬 커피는 너무 썼고, 무엇보다 좀 홀짝이다 보면 커피 가루가 입안에 흘러들어와 마시기에 영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맡았던 그 냄새는 '그리운 그 커피'의 냄새였고, 카페 안에 들어가니 찌든 때가 꼬질꼬질 탄 '그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아아,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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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po, Syria, 2009

"아이스 카페 라테. 가능해요?"

자주색 유니폼까지 맞춰 입은 직원들은 아주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제히 움직였다. 풍겨오는 향기를 통해 이 집 커피가 보통의 맛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가게 안에는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대부분의 손님은 커피콩을 사러 오거나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사람들이었다. 좁아터진 공간 안에 기어코 꾸겨 앉아서 커피를 기다렸다. 너무 연약해서 손으로 집으면 그대로 쭈그러져 버리는 반투명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나온 '아이스 카페 라테'는 기대한 만큼 차갑지 않았지만, 그 맛은 환상적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 보이고는 그 환상적인 커피를 아끼고 아껴 한 모금씩 마셨다. 올라비 카페.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아이스 카페 라테를 마시기 위해 올라비 카페를 찾았다. 커피를 마시며 몇 시간이고 그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올라비 카페의 친구들은 알레포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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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po, syria, 2009

to be continued


예전에 겨우겨우 써내어 다른 블로그에 올렸던 시리아 여행기. 언젠가 다시 손 보아서 스팀잇에 올려야지 하고 있었는데 시리아를 생각하면 민망해져서 고민을 많이 했다. 아주 복잡한 심경으로 쓴 여행기였는데, 복잡한 심경을 늘어놓은 부분은 지워버렸다. 지금은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이 생기지 않아 시리아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몹시 미안하다. 미안한 마음이 드니 다시 복잡해진다. 무슨 말인지... 그만큼 복잡하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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