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공화국 해부 Ⅰ] 박정희는 누구인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시온 (@rothbardiansion)입니다. 최근, 존경하는 지인인 @rothbardianism 님이 ‘우상의 황혼’이라는 시리즈로 steemer 여러분께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콘텐츠 중에서 제 눈을 사로잡는 글이 있었는데, 바로 박정희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저는 소위 ‘보수의 성지’라고 불리는 지방에 거주하고 있어 어릴 적부터 박정희에 대한 교조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의구심을 지속적해 가지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이러한 교조주의는 허상이었다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rothbardianism 께서도 2편에 걸쳐 이러한 허상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셨는데요. 그러한 훌륭한 평론에 조금 더 도움이 되고자 ‘제3공화국 해부’라는 시리즈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누스 같은 남자, 박정희

박정희는 민족주의자(nationalist)이자 국가주의자(statist)입니다.

민족주의란: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創建), 유지, 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 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을 말합니다. 

국가주의란: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시키는 사상원리나 정책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주장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박정희는 민족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진 않았습니다. 또한, 개인과 국가 중 국가를 우선시했던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를 주장하며 국가주의를 표방했습니다. 조국 근대화는 중상주의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즉 수출보조금을 기업에 지원하여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은 금지하는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국가주의는 간섭주의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한 간섭주의는 결국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박정희의 정치적 입장은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는 상반되게, 박정희는 자조와 자립, (부분적인) 능률과 실질을 숭상했습니다.

개인의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 자신 스스로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개인주의적 면모로서 자유시장경제와 궤를 함께할 수 있지만, 국가주의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유신체제 하에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고, 복지를 지양했다는 점입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는 반시장적 체제이므로 오히려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일맥상통하며, 양(+)의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기에 부적합합니다. 반면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잘 맞지 않고, 오히려 자유 시장경제원리의 일부이므로 양(+)의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기에 적합합니다.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1960년대에는 자조, 자립, 능률, 그리고 실질이 강조되었고, 본격적으로 유신체제에 착수한 1970년대에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박정희는 큰 틀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상충는 정책들을 시행하며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게 됩니다.

정부의 행위 vs 민간의 역할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며 성장을 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을 박정희의 업적으로 돌리곤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보신 바와 같이 일관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지 못한 체 시행했던 모든 정책들은 그 결과가 상쇄되기 때문에 굳이 박정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더라도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일어났거나, 오히려 더욱 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왜 이렇게 생각할까요?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박정희라는 특정 인물보다는 자신 스스로 잘 되고자 하는 동기(Self-motivation)가 있던 많은 다수의 개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주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1960~1970년대 한국 국민의 높은 저축률입니다. 높은 저축률을 통한 자본 축적은 경제성장과 직결됩니다. 주류경제학은 소비 측면에서의 경제성장을 주장하지만, 이 또한 거짓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당시 한국 국민의 근면함과 성실함입니다. 최근에는 주당 40시간이 근로 기준시간입니다. 하지만 1970년에는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2.3~52.4시간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높은 도전정신이었습니다. 정주영과 같은 도전정신이 투철한 기업가들이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박정희의 간섭주의 정책은 현재 한국의 기형적인 기업생태계의 원인이 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마치며

제3공화국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간략히 설명 드렸지만, 제가 중점적으로 드리고 싶은 설명은 무역정책과 환율정책 부문에서 어떤 실책을 했으며 경제 발전의 신화에 거품을 걷어내고자 합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D 그 외의 설명은 @rothbardianism 님이 너무도 잘 설명해주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 부분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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