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이 뭐니 - 자유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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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명론자



 나는 아주 철저한 운명론자였다. 엄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사주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내 성격과 재능, 현재 상황, 심지어 사고가 나는 시기까지 귀신같이 맞추는 걸 보며 필히 사람마다 태어나는 순간 운명은 정해져있고 그것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믿어왔다.

2.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작은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림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가에서 가까운 회사에 다니며 퇴근 후에는 홀로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다 기회가 생겨 서울에 위치한 학원에서 8개월 정도 그림을 배우고 프리랜서 그림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출판사로부터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못받는가 하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화료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다수의 기획사나 출판사들은 저렴한 화료로 일해줄 작가를 구하기 위해 작가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화료를 묻고 가장 적은 금액을 부른 작가에게 일을 맡겨 단물만 빼먹는다. 작가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은 전체 단가를 떨어뜨려 제살 깎아먹기로 귀결될 뿐이다. 10년 전보다 터무니 없이 낮아진 단가는 가난한 작가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나도 그렇게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며, 저녁에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낮에는 근근히 일을 받아 그림을 그리며 생활을 연명했다. 얼마 후 집안 사정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 치닫기까지.

3. 변화의 계기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을 느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20대 후반까지도 불안함에 꽉 쥔 손을 펼 수 없었을 때 처음으로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도대체 언제까지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야 하지?’ 이 질문을 품은 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내려갔다.

4. 내 안으로 들어가다.



 본가에 내려갔을 때 내 처절한 상황을 탓하기보다 답을 찾기 위해 내 안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했다. 그때 처음으로 많은 책을 탐독하고 동시에 건강을 돌보며 시간을 보냈다. 자신에게 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작은 여정은 시간이 지날 수록 선명하게 답을 보내줬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아, 네 의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사랑스러운 고양이 포밀이와 함께 지내며, 1년 동안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다가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해 얼마 전 다시 회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와 달라진건 좀 더 단단해진 내면과 스팀잇이라는 공간이다. 기업이나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컨텐츠를 생산하면 창작자에게 보상을 주는 체계는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팀잇은 나에게 작가로서 다시 꿈꾸게 해주는 곳이다.

5. 그래서 꿈이 뭔데?



 꽉 쥐고 있는 모든 것을 편하게 놓아버리고 스스로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여여히 경험하고 싶다. 그렇게 항상 기쁨 속에서 행동하고 영감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며 그 영감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몇 달 전 그러한 인생을 살고 계신 선생님은 내 눈을 통해 날 바라보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눈이 참 예쁜 거 알고 있나요? 올리아는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단지 본인의 생활도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 그 능력이 발현되지 않은 것 뿐이에요.”

 나는 내가 그리는 그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힐링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자유롭게 꿈을 그리고 싶다.




이 글은 @levoyant 님의 지명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글재주가 없어 몇 자나 적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담담하게 제 이야기를 적다 보니 글이 꽤 길어졌네요. 저는 어떤 분을 지목해야 할지 몰라 건너뛸게요!
제 이야기기를 풀어낼 기회를 주신 @levoyant 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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