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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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앉아 책을 보던 친구가 고갯짓을 하더니 짐을 정리하고 나선다.

"뭐야? 퇴근이냐?"
"가자. 짐 싸서 나와."
"어딜? 아직 할 것 남았어."
"그렇게 계속 한숨 쉬는데 뭘 더 해. 있어봤자 안 돼. 다른 사람한테도 민폐야. 먼저 내려가 있을게."

나도 모르게 또 단전에서부터 끌어다 한숨을 쉬었나 보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 할 만큼 했으니 가자.

도심을 조금만 벗어났는데 바람이 시원하다.
연일 폭염이었는데
차 안의 온도계가 벌써 2도나 떨어졌다.

가로등도 없는 곳에 차가 선다.
무슨 절 가는 길목인 것 같다. 너무 아무 생각없이 차에 타고 있었구나.

친구는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꺼낸다.
"여기다 깔겠다고? 야, 이렇게 깜깜한 데서 돗자리 깔고 앉아 있으면 지나가는 차에 치어 죽어."

"누워봐. 오늘 유성우가 떨어진대."

실랑이 할 힘도 없어 철퍼덕 누웠다.

하늘이 한바퀴 휘 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그제서야 풀벌레 소리인지, 개구리 소리인지가 들려왓다.
순간 나는 까만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별은 나에게 쏟아졌다.
그냥 그렇게 우주로 사라지고 싶은 밤이었다.
유성우를 보게 되면
이 지긋 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 참이었는데

풀벌레 소리가, 시원한 여름 바람이,
유성우를 보지 않아도 좋았다.

그대로 눈을 감으니 또 바닥이 한바퀴 휘 도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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