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기록문] 히아신스 관찰일지 - 18일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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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5일 월요일

날씨 : 맑음

"당신."

점심에 외출을 나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거실을 들락이고 있을 때, 조용히 햇볕을 쬐고 있던 히아신스가 나즈막이 입을 열었다. "예전 같지 않아요."
"예전 같지 않다니?"
뜬금없는 푸념같은 말에 나는 대꾸했다. "그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에요."
히아신스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은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이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당신은 변했어요."
"인간은 누구나 변해."
나는 바로 대답했다. 살짝 시큰둥하게 대답해버린 걸 1초만에 후회했다.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내 대답을 들은 히아신스는, 이번에는 불쾌감이 섞인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꽃이 안 피지는 않을까, 혹여나 시들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나를 돌보던 당신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당신은 이제 나를 한낱 집안 장식품으로 생각하잖아요."
"아니야."
나는 히아신스의 말을 애써 부정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히아신스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당신이 나를 천연 방향제 취급한 것까지 전부 다 알고 있어요. 그저 이 빨간색 꽃망울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나 뿜어내는, 그런 소품 취급하고 있다는 걸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 나를 귀찮아하고 있어요."
"아니야."
나는 다시 한 번 부정했다. "너는 소품이 아니야. 틀림없는 생물이야. 그건 내가 말주변이 없다보니 네 향기를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야. 내가 왜 널 귀찮아하겠어?"
"그럼," 히아신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오늘이 물 주는 날이라는 건 왜 잊어버린 거죠?"
"오늘이 물 주는 날이었어?"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양말을 떨어뜨릴 뻔했다.
"거 봐요. 언제 물을 줬는지도 잊어버렸죠. 애정은 다 식어버린 지 오래고, 그저 날 귀찮아하고 있을 뿐이에요."
히아신스의 목소리에서 노기가 더 짙어졌다.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부랴부랴 손가락을 하나 하나 꼽아보았다. 내가 언제 물을 주었더라? 히아신스는 5일에 한 번이라고 했으니까......
'......'
나는 조용히 히아신스에게 다가갔다. 히아신스의 동그란 구근을 뒤덮은 흙을 살며시 쓰다듬어보았다. 부드러움은 온데간데 없었다. 흙은 먹다 남긴 과자 부스러기마냥 내 손가락에서 부슬부슬 소리를 내며 부서질 뿐이었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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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장 정수기위에 얹어져있던 컵을 손에 쥐어, 그 컵을 정수기에 갖다대어 물을 따랐다.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을 2:1의 비율로 섞으면 꽤 그럴듯하게 온도가 맞춰진 물이 만들어진다.
"이거 때문에 화 난 거였어?"
나는 화분을 이리저리 돌리며 조심스럽게 흙을 촉촉히 적시며 히아신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이것 뿐만이 아니에요."
여전히 히아신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요즘들어 나를 보러 오지도 않았잖아요."
"너무 바빠서 그랬어. 그리고, 너한테도 개인적인 시간을 주고 싶었어."
"그럼 당신이 내 줄기를 묶어놓느라, 꽃 한 송이가 줄기 사이에 짓눌려있는 것도 모르겠군요?"
"뭐?"
히아신스의 말을 들은 나는 황급히 화분을 돌려보았다. 정말이었다. 새로 솟아나기 시작한 꽃망울에 달려있던 꽃 중 하나가 줄기 사이에 끼어서 애처롭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미안해."
나는 줄기를 조심스럽게 벌려, 끼어있던 꽃을 꺼냈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나를 잊어버리겠죠."
어느새 히아신스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맺혀 있었다. "사놓고 잊어버린 책처럼, 언제 가져왔는지 기억도 못하는 물건처럼 나를 잊어버리겠죠. 그러다가 당신이 내게 손을 건네는 순간은, 내가 다 말라 비틀어져 쓸모없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일 테고요."
"그렇지 않아."
나는 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네 향기는 이미 우리 집 곳곳에 퍼져 있어. 어느 방을 가도 네 향기가 나. 소파에도, TV에도, 심지어 개켜놓은 옷에도. 모든 곳에서 너를 느낄 수 있어."
화분에 가까이 갖다대었던 물잔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이미 내 손에는 봄내음과도 같은 꽃향기가 휘감겨있었다.
"그러니, 너를 잊어버린 채 시들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할게."
"정말이죠?"
히아신스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았다.
"그럼."
대답과 함께 히아신스를 향해 웃어보였다.
"알았어요."
히아신스는 그제야 노기를 거두었다. "이번만 용서해 드리죠."
"정말 미안해."
나는 히아신스의 눈가에 맺혀있던 물기를 스윽 닦아냈다. "난 꽃을 키우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 아직 미숙한 게 많아. 앞으로도 계속 고쳐나가야 할 게 많아. 그러니까,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바로 바로 내게 말해줘. 또 오늘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그러죠."

히아신스의 입가에 다시 분홍빛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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