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2 아버지, 아버지!

2018년 3월 3일,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더 느꼈습니다.

딱히 누군가에게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닙니다. 싸우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습니다. 싫어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많이 하지도 않습니다. 속에 있는 얘기도 안 합니다. 많이 마주치지도 않습니다. 그럭저럭한 관계입니다.

불안이 있었습니다. 걱정도 있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관계가 아닙니까. 뭐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늦게 들어오십니다. 기다렸습니다. 얼굴이라도 매일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오시면, 인사를 합니다. 피곤한 몸을 끌고 자러 갑니다. 되려 역효과가 났습니다. "왜 나만 보면 피하느냐"는 한 마디로 돌아왔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아버지와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도 있고 가족이라는 이유도 있고 종교 이유도 있습니다. 이유는 여럿입니다. 중심은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 '두란노아버지~'에서 주관한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좋은 성과를 거두진 못했습니다. 얼굴만 보는 관계가 계속 됐습니다.

3월 3일, 금요저녁예배 후에, 문득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은 어떨까?" 금요저녁예배에 저를 태우러 오시는 아버지께 말씀드리리라 다짐했습니다. 말씀드렸습니다. 신나라 하시는 상태가 목소리에 다 묻었습니다. "아, 이게 그게구나." 생각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이 적어 후회한 사람들이 느낀 감정이었지 않을까요. "아버지도 많이 기다리셨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함께'가 아닌 '산'에 초점을 맞추셔서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실망은 곧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습니다. 등산화라든가를 미리 준비하고, 형도 설득하겠다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순간 울컥했습니다. "왜 이렇게, 지금까지 무심했는가?" 그리고 "아버지는 기다리셨던 거구나." 당장은 아닙니다. 몇 주 후에야 가게 되겠죠. 이 사건, 이 느낌, 전 망각하겠죠. 망각하는 동물이니깐요. 하나만은 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기다리셨다'라는 사실. 혹자는, "네 개인적인 판단에 불과해!"라며 초를 칠 수도 있습니다. 제 독판이면 어떻습니까. 아버지의 표정, 말투에 기대와 즐거움이 묻었던 과거는 존재했습니다.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직 인생살이 안 한 청소년, 사색할 줄 모르는 젊은이, 감정이 얕은 부족한 자, 로서 존재하는 저지만 제 최대의 정서 중 하나였습니다. 인생을 더 살고, 감성이 더 풍부해지면 또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가족을 더 사랑하고 싶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만큼.

첨언 1) 역시 어른은 낮춰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글로 읽고 살아내려 노력하는 많은 '삶의 방식'을,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주위 분께서는 몸으로 부딪히며 터득하셨습니다. 몸이 기억하였고 무의식에 내장됐습니다.
첨언 2)더 깊은 이야기는 뭔가 부끄러워서 하기 힘들군요. 아버지와 나눈 얘기를 잊지 않고 싶어 여기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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