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깡통을 찼다. 그리고 절망했었다.

나는 거의 깡통을 찼다. 그리고 절망했었다.



내 안에는 괴물이 산다.
상투적인 말이 아닌 진실로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 산다.

그 괴물은 오늘도 나에게 속삭인다.
'너는 할 수 있어. 지금 이렇게 투자자산을 묶어두는 것보다 여기다 옮기면 2배는 쉽게 이익낼 수 있을꺼야~. 곧 상장한대. 빨리해. 지금 안하면 늦다니까'

괴물의 이런 속삭임이 올때마다
'아니라고. 예전의 그 피눈물 흘리던 시절을 생각해보라'고 되내이며 반복하지만 어떨 때에는 그 괴물에게 져서 또 위험자산에 처음 예정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투자금을 집어넣을 때도 빈번하다.

아래의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글이 맞다. 하지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과거에 거의 깡통계좌를 경험했었고 절망했던 시절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면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나의 몸부림도 포함되어 있다.

[나의 투자 스토리]


중간에 지금 쓰는 이글과 관련하여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이 부분은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 한다.

나는 학부시절 '회계원리'라는 수업 덕분에 주식투자를 알게 되었다.
처음 주식을 접하던 어리숙함과 달리 몇 년 주식투자를 해봄으로써 대학 졸업 때쯤에는 꽤 지인들이 알아주는 동네의 투자전문가 정도는 되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길을 가다가 어디서 주식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끗하여 그쪽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주식 이야기가 나오면 나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곳에 끼어들어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이러는 사이 주식잔고는 대략 5백만원 정도였는데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 시절에 전 재산 5백만원은, 새롭게 출발하는 자에게는 꿈에 비유할 만큼 소중한 돈이었다.

주식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왜 이렇게 좋은 투자수단을 사람들은 싫어하고 주식이야기만 나오면 꺼내지도 말라는 투의 신경질성 반응이 나오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사이 2000년대 초반에 내 주식계좌에 예상치도 못한 문제들이 연거푸 발생했다. 그중 나를 나락으로 이끌었던 이야기는 이렇다.

1990년대 중반 우리는 CD플레이어라는 것을 많이들 들고 다녔었는데 TV나 영화에서 보면 카셋트 테입 플레이어보다 얇고 CD를 넣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에 거의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소니사에서 나온 CD플레이어는 ‘소니’라는 회사명보다 ‘워크맨’이라는 제품명이 더 익숙할 정도로 히트였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CD플레이어 시장에 소니, 필립스, 삼성이 아닌 국내 중소업체가 뛰어들었고 이 기업은 CD플레이어에 MP3 기능을 더 하면서 'MP3CD플레이어'라는 신제품을 내놓았고 예쁜 디자인까지 더해져서 국내시장의 20%를 단숨에 점유하게 되었다.

이 기업이 바로 ‘레인콤’이고 대표적 제품명이 ‘아이리버’ 였다.

[참조: 아이리버 홈페이지 http://www.iriver.co.kr 제품명 T9]

위 사진은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제품은 아니지만 '아이리버의 MP3 플레이어 사진'이다.

나는 레인콤에 대한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좀 빠르게 들을 수 있었고 각종 언론에서 이 회사의 우수성이 빈번히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바로 투자를 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상장 시 나 같은 투자자에게 투자기회를 주질 않았고 공모가에서 100% 상승한 94,000원에 시초가가 결정되었으며 거기서도 투자를 할 수 없이 바로 상한가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기억에 그 날 ‘이걸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참 많은 고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부터 내 머릿속에는 회사 업무는 뒤로 한 채 이 주식을 언제 사야하는지를 몇 달간 늘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창피하여 다시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 동안 쌓아놓은 지식을 가져다 대면서 ‘이동평균선이 정배열 하고, 차트가 삼중바닥을 그리고, 스토캐스틱이 양봉으로 전환하고 등등’. 사실 돌아보면 난 정말로 어설픈 주식투자자 였기에 제대로 된 지식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오로지 ‘이 주식 사고 싶다’는 것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몇 개월을 기다리다가 결국 주당 95,000원대에 첫 번째 투자를 하게 되었다.
그때 생각을 되돌아보면 ‘어찌나 내 자신이 뿌듯했는지, 충분히 100,000원 넘은 가격에 살 유혹이 있었음에도 참고 참다가 차트가 쌍바닥, 삼중바닥을 그린 후 상승전환 시에 투자를 했다’면서 엄청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여서 ‘이 회사는 제2의 삼성전자, LG전자로 커갈 것이기에 주당 1백만원 이하에서는 절대 팔지 않을 것이다’라는 마음속 다짐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레인콤’ 주가 차트]

나는 이 회사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그 동안 내가 쌓아놓은 지식으로 지금은 기술적분석 상 사야할 시점이므로 일단 한 번 투자가 된 다음에는 추가 투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주당 95,000원대에 투자가 시작되었는데 다행히 주가는 한 동안 올라갔기에 96,000원대, 98,000원대 계속해서 주식을 샀다. 나의 욕심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나의 주식계좌에는 몇몇 종목들이 없어지고 레인콤 하나와 그 외에 몇 종목만이 남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미 보유주식 평가액의 50% 이상이 레인콤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주가가 거칠 것 없이 20만원, 30만원 달려가야 하는데 10만원 위에서 조정을 받더니 다시금 내가 투자한 9만원대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 후 심각한 뉴스가 나왔는데 바로 MP3폰의 출시였다. 휴대폰 제조업체가 MP3플레이어 기능이 탑재된 폰을 출시하게 되므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시장 논리였다.

나는 애써 ‘그럴리 없다고 휴대폰의 MP3는 품질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레인콤의 아이리버로 돌아올 것’이라고 제품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지만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투자자에게 좋지 않은 소식은 계속 들려왔다.
거원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국내 시장에 나왔고 2005년 이후 초기에는 ‘이익모멘텀 둔화’라고 표현하던 시장의 평가가 본격적으로 ‘실적하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에 무상증자가 있어서 ‘생각보단 손실률이 크지 않다’라고 마음속으로 안위는 했었지만 투자기간 동안 내내 얼마나 속을 끓이고 내 자신을 한탄 했는지 모른다.


아마 나는 철저히 제품사랑에 빠졌었던 것 같다. 역시나 결말은 상상외로 나쁘게 다가왔다. 금융시장에서 실적우려감이 극대화 되어 있었던 2005년경에 모두 손절 매도를 해야 했고 내 주식잔고는 투자 전 대비해서 80% 넘는 손실을 기록했었다.


그 돈을 내가 어떻게 모았는데.... 정말로 상투적이지만 지하철 탈 거리를 가능하면 걸어가고 커피숍알바, 과외알바 등 하루 시간을 쪼개어가면서 어떻게 대학시절부터 모은 돈이었는데....

이 당시에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나는 얼마나 실의에 빠졌는지 모른다.
중간 중간에 계속 현금이 생기면 주식계좌에 입금을 하면서 총 투자금액은 이전보다 상상외로 늘어났었고 그 금액의 대부분을 손실로 날렸기에 그 허망함은 말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용어가 ‘깡통계좌’ 였는데 사실 내 계좌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예전 어른 들이 ‘주식은 하지마라, 주식하면 패가망신이다’ 라고 말했던 것이 어찌나 가슴에 와 닿았었는지. 조금만 기업을 분석하고 재무제표 등을 공부했더라면 실적의 하향세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실적 및 기업의 기본적 특성(fundamental)과는 상관없는 테마주에 흥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상당부분 자본잠식이 진행되고 있는 회사에 ‘묻지마투자’도 안 했을 것이다.


어쩌다 투자 종목을 잘못 골랐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나의 문제는 제품에 대한 사랑에 빠졌다.
또한 주가가 급락하자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나의 욕심 '지금 투자하면 쉽게 100%는 먹을 수 있다. 지금이 절호의 찬스야. 지금 안하면 늦어'라는 내 안의 욕심이라는 괴물 속삭임에 너무나 빠르게 반응한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이제 내 안에는 적어도 투자에 관해서는 욕심이라는 괴물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요즘 암호화화폐를 대하면서 또 다시 내 안에 이 괴물이 움직임을 느낀다.
'너는 할 수 있어. 지금 이렇게 투자자산을 묶어두는 것보다 여기다 옮기면 2배는 쉽게 이익낼 수 있을꺼야~. 곧 상장한대. 빨리해. 지금 안하면 늦다니까'

언제쯤 내안의 괴물을 굳건히 이겨낼 수 있을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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