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처음 가출 #마지막] You must come back home.

안녕하세요 쟈니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면 12월이네요.
올초에 다짐한 일들은 얼마나 이루셨나요?
내년 새해 계획들은 세우시고 계시는지요?
행여 올해 세운 계획을 잊어버리신건 아니신지요?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이루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않아도 좋습니다. 원하는 모양이 아니라도,
그 나름대로의 뭔가로 남아, 또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니,
그 모습을 잘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조금 더 깊이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모든 분들의 간절한 소망이 잘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1편 ![생에 처음 가출 #1] 가출이야기와 노래의 콜라보]
https://steemit.com/kr/@jhani/7czzuy-1

2편 [생에 처음 가출 #2] 펜팔 그녀...
https://steemit.com/kr/@jhani/3zfvcw-2

3편 [생에 처음 가출 #3] 미쳐서 헤어나오지 못한...
https://steemit.com/kr/@jhani/2de9fb-3


이젠 잊기로 해요

겨울 바닷가는 참으로 쓸쓸했다.

사람없는 백사장은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모래 날리는 바람 소리로 가득했고,

텅텅 빈 듯한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소리를 최대한으로 높인 이어폰을 귀에 꼿고,

하루종일 바닷가를 서성거렸다.

"이제 뭘 하지...?"

정말 아무 계획도, 의욕도,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꼭 뭘 해야만 하나...? 아무것도 안하면 안되는 건가?"

불어오는 바닷 바람이 내 잡념들을 날려주길 바라며,

지난날을 찬찬히 돌아봤다.

열병같은 혼자만의 짝사랑, 미쳐 빠져든 음악,

접어버린 공부와, 계획없는 하루하루...

그래도 후회스럽지는 않았던 날들이었다.

아니, 후회스럽더라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며칠 바닷가에 머물며 이런 저런 생각에 하루하루 보내다,

문득 잊어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고, 잊고, 비우고...그렇게 마음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잡념에 사로잡혀 안으로 파고 들어갈 바엔,

차라리 홀가분하게 훌훌 털고, 비우자고 생각을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다 문득, 난 아무런 준비가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 나설 준비"

이대로 세상에 나갔다간, 이 바다를 더 자주 찾아와

온갖 청승은 다 부리릴 듯한 느낌...

"그래..시간을 좀 더 벌자. 난 아직 준비가 안됐거든..."
"대학을 가야겠다!!!"
"뭘 했든, 지난 날 다 잊고 새로 시작해보자."

"잊을건 잊고,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하고..."
"여기서 나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빨리 집에 가서, 시간 벌 준비해야겠다."


(김완선 - 이젠 잊기로 해요)

--

못난 아들

(바닷가를 오기 며칠 전 서울.)
"어머니..."

"어...왜?"

"어머니, 서울사는 어머니 사촌동생분...집 전화 번호 좀 알려주세요..."

"왜?..갑자기 그 집 전화번호는 왜?"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빨리 들어와...아버지가 회 사오셨다"

"아니..그러니까...회가 중요한게 아니라...저 지금 서울이예요.."

"뭐? 서울은 왜? 언제 갔길래...?"

지난 밤 돈을 훔쳐 집을 나간 아들은, 그저 친구집에 가서 자거나,

아니면, 늦잠을 자고, 밖에 나간줄로만 알고 있었다.

뜬금없이 서울이라니...

어머니는 그날 딱히 돈 쓸일이 없었는지,

지갑 속 돈이 사라졌는지도 몰랐고,

돈 대신 들어있던 쪽지도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답답해서, 지갑에서 돈 훔쳐 집 나왔다고, 자초지정을 말하고,

외가쪽 친척분 집에 하루 신세 질 요량으로 전화번호를

알고 싶다고 전화를 한거다.

형이나 누나가 없는 나는, 오촌 아재(8살차이)가

형처럼 좋았고, 그땐 더더욱 누군가의 조언이 절실했었다.

그렇게 연락을 하고, 용산역에서 만나, 저녁을 얻어먹고,

집에서 같이 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부모와는 다른 또 다른 편안함에,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었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음을

털어 놓았다. 답을 얻으려고 한건 아니지만,

그저 누군가가 나의 상황에, 나의 마음에 귀 기우려 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변진섭 -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다음날, 이모 할머니께선, 진수성찬 아침에,

두둑한 용돈을 챙겨 주시며, 꼭 끌어 안아주셨다.

"요놈 요고...참말로 대견 하네.."

"...네?...저 시험도 떨어지고, 가출한답시고 집도 나오고..."

"집 나와서 엉뚱한 짓 안 하고, 멀리 사는 우리한테
인사도 오고...밤 새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시험 떨어졌다고 시무룩해 있을 줄 알았는데, 잘 웃고..
대견해서 그런다 이눔아..."

나도 모르게 이모 할머니를 다시 안고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미 목소리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야단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뜻밖의 따뜻한 말이

나를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다 큰 놈이 울기는 와 우노?"
"추운데, 너무 오래 집 나와 있지말고,
엄마 걱정 안 하게 빨리 들어가거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이모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불쑥 찾아간 아들 대신 미안해하시며,

맛있는것도 사 드시고, 용돈도 하시고,

아들래미 차비라도 좀 쥐어주라며,

거금(?)을 송금했다고 했다.

공사 대금도 받지 못해, 집안 살림도 좋지않았을 텐데,

집 나간 아들놈을 그렇게 뒤에서 챙기고 계셨던 것이다.

전화를 했을 때, 돈 훔쳐 집나간 건 무심한듯,

아무말 안 하시다가, 뜬금없이 친척집을 간다고 하니,

아무리 친척이지만, 그런식으로 블쑥 찾아가는건,

결례라고 전화기로 엄청 화를 내시고 야단을 치셨다.

하지만, 무심한 척, 뒤에서 안보이게 자식을 챙기셨다니...

나라는 놈...행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반항하며,

내 맘대로 살고 있었다.

지금 생각 해보면, 참으로 어리고, 못난 아들이었다.

아버지와 첫 잔

그렇게 이모 할머니댁에서,

든든한 아침과, 두둑한 용돈을 받아 챙기고,

강릉행 버스를 탔다.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는 낙산 해수욕장을 가기 위해,

서울에서 강릉으로 강릉에서 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해가 지고 한참을 지나, 어두워 져서야 바다에 도착을 했다.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바라보고 있는 한 가게...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 한 병과, 어묵 몇 개를 시켜 놓고,

테이블에 얹어진 신문을 무심코 펼쳤다.

후기대...전문대... 대학 광고가 눈에 띈다.

"이 상태로 시험을 다시 본다고 되겠나...."

맥주가 두어잔 들어가자 숨은 가빠왔고,

머리도 어지럽고...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걷다가, 모래위에 주저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겨울 밤바다는 나를 그리 환영하지 않는 듯,

시커먼 바닷빛을 보이며, 칼날같은 바닷바람으로 맞이했다.

그렇게 며칠을 거기서 보내며, 마음을 다 잡고, 집으로 왔다.

아들의 여행같은 가출따윈 다녀왔냐는 짧은 인사로 마무리 되었고,

그날 저녁, 난 술 두어병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와서,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다며, 잔에 술을 따라 드렸다.

처음으로 부자간 술을 나누는 자리...

난 잔만 받아 놓고, 말 없이 비워지는 술병만 바라 봤다.

"뭔 말을 할라꼬?"

무툭툭한 한 마디에 덜컥 겁이 났지만,

"아버지...죄송합니다. 저 1년 만 더 뒷바라지 해주이소"

재수는 없다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 하신 터라,

이 말꺼내기가 무서웠다.

"....."

잠깐의 침묵이었지만, 내게는 엄청난 시간...

"미안하다...."

그래...그러실만도 하다..

집안 상황을 눈치껏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해도 놀라지 말자며 부산으로 오는 길에 생각을

해서인지 아무렇지 않았다.

"내 장사 해볼라꼬, 니 고3때 이사하고, 가게열고,
장사 처음이라, 자리도 안잡히고, 어쩌다 보니 수금도 안돼서,
니 한테 신경도 몬써주고...미안하다..."

"마~ 한 잔 더 따라 봐라...그라고 니도 마시고..."
머슴아 자쓱이 술을 사왔으면 마시야지..
아부지 앞에 앉혀 놓고 제사 지내나?"
그라고 보이, 우리 아들하고 처음으로 술 마시네..."

"맛 좋!!"

"암튼, 이래저래 신경 못 써줘서 미안타."
아부지도 인자, 이걸로 툴툴털고, 다시 힘내서 일 할끼고,
니도, 마음 다 잡고, 다시 한번 공부해봐라~!"

"...예?"

"재수한다매? 공부한다는 놈을 내가 무슨 수로 막을끼고?
니가 사준 이 술...절대 잊지 말그라...이 술 사올 때 그 각오.
안 삐뚤어지고, 엉뚱생각 안하고, 내 새끼 이래 건강하이 커준것도 고맙다.
니나, 나나 이 술로 시험떨어진거, 공사대금 못받은거, 툴툴 털고
지금 부터 또 신나게 함 살아보자. ^^"

"이거이거..우리 아들래미 다키았네...아부지 기분도 풀어줄쭈도 알고..."

왜 그리 눈물이 났을까?

한꺼번에 몰려오는 뜨거운 감정을

왜 그리 주체 할 수 없었던 걸까?

"이 새끼가 아부지 앞에서 술잔 받아 놓고 쳐 울고 앉았네...
마~ 니 진짜 제사 지내나..퍼뜩 안 마시나...?"

"예.. 아부지...."


세상은 나에게..

한꺼번에 녹은 빙산의 얼음이, 물이되어 계곡을 흐르듯 ,

응어리진 그 무언가는 한꺼번에 녹아 눈물을 만들어 냈고,

봄날 힘찬 기지개 마냥, 거짓말 처럼 집안 분위기가 살아났다.

의욕상실에 무표정하던 어머니도, 눈치보며 집안 분위기 살피던

동생도, 그저 신이 나있었다.


(김원준 - 세상은 나에게)

세상에 나설 준비...난 또 그렇게 공부에 미쳐갔다.

더 이상 반복되는 하루가 아닌, 목표가 있는 하루가 되었고,

가게 인근 대단지 아파트의 이사철과 맞물려, 가게도 잘 되었다.

다음해, 난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작지만 작은 단층 건물을 사서,

가게도 옮기게 되었다. 다음해엔 동생도 대학교에 들어가고,

본격적으로, 가족끼리 둘러 앉아 삼겹살과 소주를 먹기 시작했다.

"마~! 이 짜슥들이 아부지가 따라주믄, 고맙심니데이~하고 마시야지,
어데서 빼고 앉았노? 퍼뜩 마시라. 엄마가 짠 할라고 기다린다"

내 생에 첫 가출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고,

아버지가 따라주던 술로 반항끼 어린 사춘기를

마무리하게 되었음을 느꼈다.


지난 주... 수능 시험 날...

뉴스를 통해, 시험장까지 데려다준 부모님께 큰 절을 하던

수험생을 봤다. 대견스러워보이는 아들과 환하게 웃으시는

부모님...

다음주...아버지 기일...

돌아가시고 10년간 제사를 지내고, 어머니의 제안에 따라,

형식적인 제사대신 오붓하게 가족끼리 식사하며,

그 날을 기리자고 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혼자서 조용히 술 한잔을 따르고, 큰 절을 올릴까 한다.

아버지가 부르던 내 이름...그리고 내가 부르던 아버지....

이젠 내가 그 자리에서, 내 두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은 나를 아빠라 부르고 있다.


(싸이 - 아버지)


길어질 거라 생각 하지 않고 1편을 시작했는데,

이렇게나 길어 졌습니다.

긴 글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손글씨 만들어주신 @sunshineyaya7 님 감사합니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