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의 부고와 스티브 잡스 메멘토 모리 바니타스 다시 태어남

1833년, 노벨이라는 사람이 스웨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학자요 발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그리고 33세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신문 기사를 보던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부고 내용은 노벨 자신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노벨의 형을 노벨로 착각하고 '노벨, 사망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고 되어 있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내가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을까?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노벨은 복잡한 심경으로 숙고한 끝에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지원했으며,이렇게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노벨상 제도입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옳은 삶을 살 것이다.-가 있는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트 졸업 명언설은 다음과 같다.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제가 17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그리고 여러 날 동안 대답할때마다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회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왜냐하면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이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벗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노벨은 실수의 신문 부고 때문에 다시 태어났고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명상하는 삶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의 문제점은 죽음이란 것을 끌어당기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주가 죽음의 기운을 보내줘서 췌장암으로 중년의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처럼 서구인은 메멘토 모리라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을 해골을 통해서 항상 죽음과 친숙한데 동양은 죽음이 금기가 되어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동양은 봄이기 때문에 삶에 대해 중시하고 서양보다 기독교등 신이나 종교가 덜 발달되었다. 또 신체발부 수지부모 효도를 해야하므로 전쟁에 나가서 다치거나 자살, 죽지 말아야 했다. 따라서 칼보다 붓이 더 발달을 했으며 일본은 사무라이등 칼의 문화였기 때문에 탈아입구로 서양화를 많이 따라갈수 있었다. 서양도 중세시대 기사도정신이나 내세의 천국사상, 영혼불멸사상등이 있기 때문에 전쟁에서 동양군인보다 목숨을 내 놓고 싸운 경우가 많고 모험심으로 지리상의 발견[식민지 약탈]을 가져왔던 것이다.
미술평론가 유경희님의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라틴어 ‘바니타스(vanitas·영어로는 vanity)’는 허무, 무상, 허영을 뜻한다. 바니타스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거의 모든 정물화의 기본 주제다. 그중에서도 해골이 등장하는 정물화를 특별히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부른다. 인생이 허무한 건 인간이 죽음 앞에 무력하기 때문이고, 해골만큼 죽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티프는 없기 때문이다.
초기 바니타스 정물의 대표작인 바르텔 브륀 1세가 그린 ‘제인-로이즈 티시에르의 초상화 뒤편에 그려진 바니타스 정물’에는 두개골이 벽감(니치)에 놓여있다. 두개골은 이미 턱뼈가 빠져 있는데, 인체가 점차 해체, 소멸되어 가는 과정의 표현이다. 두개골 위로 파리 한 마리가 앉아있는데, 이는 부패와 욕망 그리고 유혹의 상징이다. 다시 말해 죄에 얽매인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골의 주인공 역시 그런 고뇌와 번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왼쪽 앞에는 촛대에 반쯤 타다만 양초가 있다. 아마 예기치 못하게 빨리 찾아온 죽음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압정으로 고정된 메모에는 고대 로마의 에피쿠로스학파 루크레티우스의 “모든 것이 죽음과 더불어 썩어지고, 죽음은 사물의 마지막 경계선이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핵심 모토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다.

물론 잡스의 경우는 본인은 선불교를 따라하고 명상을 했다고 하지만 한의학적으로 화를 많이 내고 간목이 비토를 극하는 상극의 기운으로 토에 해당하는 췌장이 손상을 받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무튼 노벨이나 잡스나 죽음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 것은 많은데 성경에서도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한다.
암수술로 사람은 죽을 사람이 다시 태어나기도 하지만 흉터도 자향미 한의원의 침치료로 다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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