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Beijing, China



더는 글을 볼 수 없다. 이제 이곳을 떠났을까. 그러나 그가 남겼던 글은 이곳을 떠나고 있지 않다. 아니 떠날 수 없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블록체인에 깊게 상처를 남겼다. 솜씨 좋은 의사의 칼질도 소용없다.




Beijing, China


난 매일 도둑고양이처럼 그의 글을 훔쳐갔다. 때로는 그의 사진을 저장하기도 했다. 나쁜 짓이라고? 내 것 다시 찾아가겠다는데 누가 뭐래. 대변자처럼 그는 내 얘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웹하드가 털린 느낌이다. 절대 잃지 말아야 하는 마음의 마스터키가 유출되었다.

프로필 사진도 없고, 자기소개도 없다. 팔로워와 팔로우도 없다. 뭐야 이 사람. 청정지역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 누군가 댓글을 달면 답도 없다. 나도 댓글을 달았는데 답이 없어서 화가 났다. 자기에게 댓글을 달면 먼저 상대방의 사진을 찾아보지 않는가. 내 사진을 보고도 답이 없다니.

처음엔 밀당이라고 확신, 했다. 난 소중하니까. 근데 이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소식이 없다. 열 받아서 뒤를 까봤다. 근데 아주 깨끗하다. 다른 사람 글에도 댓글을 달지 않는다. 보상 거절(decline payout)까지. 사이코인가. 고래도 아닌 게.

사이코야 사이코. 근데 매일 들어와 그의 글을 읽었다. 왠지 스타일은 프레피 룩(preppy look)이다. 200자 원고지에 쓰듯이 가지런히 글을 쓰고 사진을 첨부한다. 맞아, 원래 사이코나 변태가 겉보기에 단정해. 사이코에서 변태, 나쁜 놈까지 욕을 할수록 그의 글을 하나하나 정독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쁜 남자에게 걸렸다.


Gimpo, Korea


여권을 펼쳐 자동출입국심사대에 올려놓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다음 검지를 올려보고 앞 카메라를 바라봅니다. 출국이 허락됩니다. 나는 숫자, 지문과 홍채인가요. 너무나 쉽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요. 나는 가끔, 아니 자주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당신은 날 어떻게 알아요.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이곳에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난 그 옆에 있다.




Beijing, China





Written and Photographed by @iamruda
Ⓒ 2018 iamruda




추천 음악:
莫文蔚의 <忽然之间>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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