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김여사의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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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어제 글을 두시간 가까이 썼는데 날아가서 멘탈이 매우 유약해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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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서 한달넘게 연락은 안하고 있지만 우리집 김여사님(my mom)은 팍팍하게 사는 다른 가족구성원들과는 다르게 늘 여가생활을 즐기고계셨다. 3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녀는 요즘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으셔서 저퀄리티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연휴전이라 일도 손에 잡히지 않으므로 함께 김여사님의 취미의 역사를 파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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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로 즐기고 있지만 인증서 - 자격증 - 수료증 등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증서가 나오면 좀 뿌듯할것같다. 일단 김여사님의 자격증 부분이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지독한 컴맹이라 컴퓨터 조기교육을 꾸준히 받았는데 워드프로세서 3급을 7번째떨어지던 그 때에 김여사님이 날 바라보던 경멸스런 눈초리를 잊지못한다.
그녀는 워드 1급과 엑셀 1급을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그녀는 독수리타법이고 나는 다년간의 채팅으로 숙련된 1000타의 키보드마스터이다. 역시 자격증은 실제 활용능력과 정비례하지는 않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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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님은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가지고 계신다. 어렸을적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여사님이 한창 한식에 빠지셨을때 실험적인 음식을 만드시느라 한동안 가족들의 모든 수입이 식료품비로 들어가서 가정의 평화가 깨졌었던것 같다. (가계부를 보며 파르르 떨던 아빠의 모습을 기억한다.) 무튼 이것도 자격증이 크게 실용적이지 못해서 내가 오랫동안 타지생활을 해왔지만 집밥이 그리 그리워지지는 않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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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취득하신 공인중개사자격증. 가끔 두꺼운 책을 보시길래 뭐하나 싶었는데 .. 내일모레 예순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존경스럽긴 하나 나는 우리 부모님이 부동산투자에 성공한것을 한번도 목격하지 못하였기에..... (또르르) 이것도...... 크게 실용적인 자격증은 아닌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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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문화-예술 부분이다. 김여사님은 내가 아는아줌마 (몇없지만) 중에 가장 독서량이 많은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문화 - 예술 방면에 조예가 깊으신데 안타깝게도 그 어떤 분야에도 재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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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녀의 첫 작품활동은 나의 유년기에 시작되었다. 내 스케치북 하나가 300-500원하던 시절 김여사님은 한장에 오천원짜리 수채화용 캔버스 위에 수많은 습작을 남기셨다. 어느날 채색을 위해 한개에 5만원하는 족제비털 붓 세트를 사오셨을때 나는 아빠의 입꼬리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튼 그녀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미술계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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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님은 내가 고딩말-대딩초까지 비즈공예를 즐기셨던걸로 기억되는데 온 집안에 잘 보이지도 잘 잡히지도 않는 비즈알들이 굴러다녔다. 여사님은 주말마다 동서남북? 대문으로 유니크한 비즈공예 재료와 부자재들을 구하러 다니셨고 나에게 경제권이 있었다면 절대 구매하지 않았을 디자인의 귀걸이, 목걸이 세트들을 많이 만들어 주셨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미적인 감각이 없는 나였기에 무비판적으로 잘 착용하고 다녔던걸로 기억한다. 어느정도 미적인 사회화가 된 지금 그때 하고다녔던 김여사님표 비즈작품들을 보면... 음....
함구하고싶다.
연락은 안하지만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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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전부터 시작된 그녀의 취미는 프랑스자수. 오십대 후반이 되면서 부터 눈이 침침하다는 이유로 많은것을 나에게 미루셨는데 자수놓을때는 침침하지 않나보다. 뭐. 나도 술마실땐 없던시간과 돈이 생겨나니까 같은이치인듯~
그녀는 안타깝게도 견본이나 도안이 없으면 자수를 놓지 못하는 창의력 제로의 여성이고 나는 하나를 만들더라도 독창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홍대병에 걸린 어른이기때문에 . 그녀에게 오더한 제비자수는 내가 직접 도안을 만들어서 드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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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입시미술학원 ㅇㅇㅎㅁㅅ 출신인 내가 인터넷 보고 그린 도안. 그림보니까.그길로 계속 갔으면 정말 밥도 못빌어먹고 살았을 뻔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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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완성된 자수. 실제로보면 조금 더 엉성하긴 하나 제법 oldschool 스타일의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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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을 본 이후로 내 다리베개 이름은 줄곧 왕기였다.
나의 첫 2d 남친이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섬유유연제 색이 물들어서 버려야하나 고민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세탁한 결과 이제 다시 뽀얀 모습을 드러냈다.
요즘은 orange is the new black 을 보느라 이름을 알렉스로 바꿀까 고민중이다.
알렉스 언뉘 사랑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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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했듯이 김여사님은 요즘 완성도가 낮은 제품들을 다작하고 계신데 밥상도 변변찮은 자취방에 식탁보를 주셨다.
한두번 쓰다가 걸리적 거려서 치워버렸다.
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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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연휴엔 본가에 내려가서 돈봉투와함께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겠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들과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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