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안되면 어떡할거냐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

"퇴사 하겠습니다"

드디어 알렸다.
나의 퇴사 의지를!

#1

지난 11월, 퇴사를 결심하고 고민을 참 많이했다.

내가 정말 나가서 잘할 수 있을까?
자리만 지켜도 돈 따박따박 나오는데 그냥 눌러앉을까?
부모님은 어떻게 설득하지?
여자친구는 또 어떻게 설득하지?

자신에 대한 확신이 굳건할 때는 장판교에서 홀로 조조군을 막아선 장비마냥 어떤 의혹이나 걱정도 맹렬하게 무찔렀지만, 일이 잘 안 풀릴 경우를 생각할 땐 마음이 약해지고 이따금씩 포기할까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던 나에 대한 믿음은 올해 1월말즈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일이 잘 안풀렸을 때? 그런 고민은 미래의 나보고 하라지, 뭐!'

투자도 예상대로 안되면 시장 상황에 맞춰서 대응하는데, 인생도 어떻게보면 시간을 투자하는 시장이니 상황에 맞게 대응하면 되겠지. 손절은 4% 이내, 단타는 10% 내외 같은 투자원칙만 잘 지키면 위험관리하면서 즐길 수 있듯, 인생도 행복과 재미를 찾자는 원칙만 잘 지키면 즐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미래의 고민은 미래의 나에게 미루고보니, 퇴사하기까지 하나 걸리는 게 남았다.

회사에는 언제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2

회사에 대한 불만보다 인생 재밌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퇴사를 결심했기 때문에 그동안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나의 부재로 인한 피해를 주고싶지 않았다. 우리팀은 항상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려서 내가 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피해가 가게 되겠지만, 최대한 나의 공백을 메우고 싶었다.

그래서 틈틈이 내가 하던 업무 매뉴얼을 하나씩 만들었고, 내 자리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타부서 사람에게 넌지시 처음보는 사람도 알아볼 수 있도록 문서작성을 요구했다.

어느정도 정리를 하고나니 옆자리 담당 차장님 생각이 들었다. 업무환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 적응하지 못하고 헤메고 계신 우리 차장님. 퇴직도 얼마 안남으셨는데 말년에 고생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퇴사를 결심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조금이라도 이 사실을 일찍 알려드려 나름대로 준비하실 수 있게끔 하는 것 뿐. 넌지시 말씀드렸다.

"차장님,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차라도 한잔 하시겠습니까?"

#3

"나랑?"

3년 넘게 다니면서 처음 있는 일이기에 매우 당황한 눈치셨다.

"예. 바쁘시면 나중에.."

"아니다. 지금 가자."

조금 떨어진 회의실로 가 마주앉았다.

"3월까지만 다니고 그만두려고 합니다."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인다.

"뭐? 아니 왜 갑자기.. 어디 다른데 가나?"

"다른데 가는 건 아니고, 예전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더 늦기전에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어디 3월에 바쁘게 가야되는건가?"

"그런 건 아닙니다."

조금은 안심한 눈치다. 잠시 생각하시는가 싶더니

"6월까지 다니는 게 어떠냐. 원래 인사나기 전까지 다니는건데.."

"하고싶은 일이 회사 다니는 중엔 못해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 후로 좀 더 다니는 게 어떻겠냐는 차장님과 퇴사일정을 조율하고 4월까지 다니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제서야 나가서 뭘 하는건지, 무슨 생각인지 물어보신다. 그리고 퇴사할 때 다른 사람들이 경력만 쌓고 나가는 줄 알면 인식이 안좋아지니 마지막까지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여러 팁들을 주셨다.

요약하면 끝까지 바쁜티 내면서 열심히 하는 척 하는거였지만.

얘기하고 나니 신경써주시는 것에 감사했고,
무엇보다 후련했다!

고민을 차장님께 드렸다.

#4

여자친구에게 이 후련함을 알렸다. 그런데 목소리가 좀 가라앉는게

"얘기했다고 하니까 이제야 좀 실감이 나네."

"만약 잘 안되면 어떡할거야? 1년 뒤에도 자리 못잡고 있으면?"

"가정이 참 암울하네. 글쎄, 더 열심히 해야겠지?"

"생활비도 떨어지고 그러면?"

"글쎄.. 알바라도 뛰어야겠지."

퇴사 결정을 알렸을 때 했던 암울한 가정들을 다시 하고있는 모습을 보니 진짜 실감이 났나보다.

"금융위기 올 거 같다며.. 괜찮은 거 맞아?"

응.. 그 생각은 2년 전부터 했어. 잘 안오더라. 진짜 오면 상황 보면서 대응해야지.

"괜찮아. 그리고 지금까지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어떻게 되지 않을까? 나도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남들 놀 때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미래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 안에 뭔가 쌓여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불안해. 하지만 새로운 걸 시작할 땐 항상 불안한 거 같아. 어쩔 수 없어. 불안하지 않을 때까지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뭐.. "

진지한 얘기가 마음에 든 거인지 그제서야

"그래! 잘 될거야!"

응원해준다.

나도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1년 뒤에 어떻게 되어있을지 잘 모른다.

그래도

1년 뒤가 예상되는 것보다 더 재밌을 것 같다.

생각대로 안되면 어떡할거냐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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