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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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시 반이면 정확하게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4인 입원실에 4인의 환자도 똑같이 눈을 뜬다.

<풍경 1>
오른쪽 옆자리의 아저씨는 -가장 움직임이 수월한 - 병실의 오래된 고참답게 아침을 일찍 서두른다. 부산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간호사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갈비뼈 골절이라는 그는 늘 웃는 얼굴이지만 막걸리를 세병쯤 마신 걸걸하고 진득한 음성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골고루 시선을 분산해 놓고 있다. 레이다망에 포착되자마자 예의 그 걸걸한 음성으로 도움의 역사가 시작된다.

<풍경 2>
왼쪽 옆자리의 아저씨는 어젯밤에도 밤새 신음소리를 내며 잠을 설쳤다. 장기를 들어 내고 수술한 뒤 다시 장기를 넣었다는 그는 큰 수술을 마친 뒤라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신 낮에는 세상 모르고 코를 곯며 주무신다. 밤이 되면 그는 고통의 심연에 빠져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혼자서 외마디의 비명과 신음과 한숨 섞인 소리를 밤새 내 놓는다.

<풍경 3>
그 옆의 옆자리 아저씨는 종일 휠체어를 타고 여기저기 누빈다. 티브이를 너무 사랑해서 밤늦게까지 몰래 보는 걸 좋아하고 늘 명랑한 음성으로 이야기하지만 그는 한쪽 다리를 절단한지 얼마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병원으로 곧 옮길거라고 큰 소리로 자랑을 일삼더니 우리중 가장 먼저 병원을 나섰다. 에어컨 옆자리의 그가 에어컨의 냉기를 차단했던 모양이었는지 푹푹 찌던 우리 방이 아저씨가 나가자마자 시원해졌다.

<풍경 4>
그리고 내 옆의 우리 꼬맹이, 용감하게 수술을 받고서 하루정도는 아가가 되었지만 이젠 다시 맑고 명랑한 내 아이가 되었다. 잘 웃고 잘 떠들고 잘 먹고 잘 놀고 언제나 해맑은 아이는 병원에 누워있어도 반짝반짝거린다. 며칠을 씻지 않아도 더러워 보이지도 않고 자고 막 일어나도 헤어 스타일이 살아 있다. 부럽다!

<풍경 4+1>
이 방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아프지 않은 여자사람이면서 가장 부시시해보이는 나는 수시로 병든 닭처럼 졸고 있다. 읽을 책도 챙기고, 볼 영화도 다운 받고, 사업계획서도 쓰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뭐라도 하나 할라치면 졸려서 아무것도 할수 없다. 이방엔 피곤함의 공기가 가득해서 숨쉬는 것 자체로도 피곤함을 더해가는 것 같다. 피곤가스에 중독된 것 같다.

<풍경 4+2>
아, 이 방의 가장 중요한 풍경을 담당하고 있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새벽 5시 반부터 취침시간인 밤 10시 반까지 무려 17시간을 열일하는 티브이가 그것이다. 주로 스포츠 채널이나 뉴스 채널에 맞추어져 있어서 티브이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같은 뉴스가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앵커 코멘트와 자료화면이 몇번이고 반복되어서 내용을 외울 지경이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어도 티브이는 음과 글을 비집고 들어와 떡하니 나의 사유와 시야를 방해한다. 다른걸 하나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번외>
티브이보다 더 열일하는 간호사들과 간병인들이 있다. 이 병실은 간호와 간병인 포함병동이라 수많은 간호사와 간병인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간호사와 간병인이 처음엔 구분이 안되었으나 하는 업무 내용으로 조금씩 구분이 되어 간다. 설명도 자세히 잘해주고 웃는 얼굴로 응대를 해줘서 편안하다. 보호자가 없어서인가 병문안객도 많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병문안 문화도 많이 달라진듯 하다. 그 전엔 왁자지껄 병문안을 찾아가 음식을 차려먹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러한 시끄러움은 사라진 듯해서 좋다. 이 병실에서 내가 손님이 제일 많다. 친구들 만남은 모두 병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이다.


사람이 빚어내는 풍경을 만난지 너무 오랜만이라 처음엔 낯설었지만 서서히 나도 하나의 풍경으로 동화되어 가는 느낌이 싫지 않다. 내일이면 떠나야해서 조금 더 그럴 수도 있겠다.

모두 하루 빨리 회복해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셨으면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새로 들어온 젊은이를 빼고 우리 셋은 내일 집으로 돌아간다. 이 곳의 풍경은 곧 다른 색과 질감과 향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곧 모두들 동화되어 하나의 풍경을 이뤄갈 것이다.

바이바이~ 모두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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