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침묵의 금기를 깨다.

image

오늘은 개인적인 문제로 머리가 좀 무겁습니다. 3년전에 동문 상조회를 우연치 않게시작하게 되었는데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외국에 살고 있어서 정기모임이나 경조사에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회비 내는 일과 간단한 위로의 말로 대신하고 있는 제가 이제 입장이 달라져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실 수 있나요? (다음은 제가 경조사 커뮤니티에 올릴 글의 일부입니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본다.
한국이 그립고, 친구도 그립고... 나는 늘 그렇게 그리운 처지에 놓여 있구나.
올해는 유난히 추워서 고생들이 많겠네. 건강들 잘 챙기고 있지? (중략)
나는 이 문제가 특정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행과 만행으로 표출되는 꼰대정신이 우리 친구들에게도 침투해 있다는게 안타깝고 슬프기 그지 없구나. (중략)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사회적 위치라는게 발생하지. 그건 우리가 지위를 남용하거나 권력을 휘두르라고 있는건 아니겠지.연륜과 지혜로 곤궁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수고로움으로 얻은 경제적 여유를 베풀 줄 알며, 타인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약자에게 사회적 복리를 돌릴줄 아는 여유. (중략)
작게는 우리 친구들 관계에서 말한마디, 행동 거지 하나, 크게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행하는 질서있는 행동. 그런면에서 볼때 며칠동안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이 결코 아름답다라고 말할수는 없겠구나.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중략)
내가 먼저 침묵을 깨기로 한것에 대해 양해를 부탁한다.
나는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친구인 xxx를 상조회에서 강제 탈퇴시킬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중략)


침묵하는 자

어제 스팀잇에 논란이 되었던 글을 대했을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역시 살던 대로 입을 다물고 내 갈길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나는 늘 그렇게 침묵하는 자의 편에 서서 살아왔습니다.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 구조나 체제를 비판할 때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살면서 내 친구와 내 이웃을 비판해 본적은 거의 없습니다. 층간소음 문제가 생겼을 때도 저렇게 뛸만한 이유가 있겠지, 끼어들기 얌체운전자에게도 무슨 급한 사정이 있겠지,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못 배워서 그러겠지. 누구에게든 비난의 화살을 돌려본 경험은 별로 없습니다.

뒷담화를 혐오하고 가식적 관계를 터부시하며 오로지 진심과 이해를 관계의 정수로 여기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내가 친구를 잘라내야 하는 시점에 서게 되니 내 살을 도려내는 듯 아픕니다. 그런데도 내가 이 일을 공식적으로 거론하게 된 데에는 침묵의 금기를 깨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입니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미투 운동(#MeeToo 나도 피해자다)이 우리나라에서는 문단내 성폭력 고발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이어져 한국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흔히 용인되어 왔던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또는 성폭력 사태를 고발함으로 그런 행위가 용인되어서는 안 될 폭력임을 자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남자동문의 경우 동문내에 알리고자하는 여자동문에게 명예훼손죄를 운운하며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엄포를 놓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 법이 일단 타인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하기만 하면 허위, 진실 여부를 불문하고 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되므로 명예훼손 고소, 고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소 공방이 이어지면서 결국은 남자동문이 여자동문에게 간단한 유선상 사과로 일단락 되어졌지만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미투운동이 점점 성 대결 양상을 띠면서 법적 공방으로 가는 현 상황이 우리 동문내에서도 같은 양상으로 보여졌던 겁니다. 결국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의 제시나 타동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사건은 마무리 되어질 상황입니다. 굳이 미투 운동에 빗대어 보지 않더라도 남자동문의 태도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용납할수 있는 선을 넘어선 상태라고 판단합니다.

침묵의 금기를 깨다

미투운동이 성폭력 피해에 관한 문제의식을 이끌어내고, 대중은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 기존 성폭력 관점을 깨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의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관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될것이 바로 대중의 관점입니다.

다시 침묵의 이야기로 넘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나조차도 법적 싸움 운운하는 두 친구의 싸움을 말리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왜냐고요? 그 누구의 편에서 서서 목소리를 낸다는 행위 자체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맞지 않아서 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앞으로 몇시간후 내가 상조회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도 나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침묵하는 대중이, 동문들이 모두 문제를 등한시하거나 관심이 없거나 동조하기 않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속에서 침묵하는 방식으로, 조금은 수월하게 살아갈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일 뿐이므로 그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침묵하는 다수중의 하나에서 금기를 깨고자 하는 이유는 문제의 해결 방법 때문입니다. 경고가 아닌 퇴출을 공론화 시키고자 하는데는 그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정을 부정하다고 외치는 과정에서 좀더 강력한 방법으로 동문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첫번째 목적입니다. 두번째는 절차를 통해 얻어진 강제적 벌칙을 통해 부정의 싹을 도려내는 것이고요, 세번째는 향후 재발의 싹까지 처단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고발자가 되고자 함은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건전한 모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시작점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우려는 떨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숙성되지 않은 생각으로 저지른 행동이 과연 우리 모두를 위해 잘 한 것일까? 그냥 이대로 시간이 흘러 해결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아무래도 며칠밤은 다리 뻗고 자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으며, 어떻게 바꾸어 나갈것인가에 대해 언론과 시민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집요하게 관심 가져주시기 부탁드린다.
(서지현 검사)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
Logo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