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랫말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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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숙제를 내주었다. 한국에서 청소년 모국연수 캠프를 다녀온 직후였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좋았던지 아이는 캠프 끝나고 나오면서 눈물을 보였다. 내 아이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울면서 안아주며 7박8일의 긴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기회에 모국에 대한 애정도 부쩍 자랐으리라 기대해 본다. 참 다행이다.

그나저나 아이는 나에게 슬픈 노랫말을 한글로 써달라고 했다. 주제는 남녀사랑에 관해서라고 콕 찝어 주었다. 내가 가사를 쓰면 아이가 곡을 붙여보겠다하니 안 해줄 수 없지만 도통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설마'와 '특별한 여행'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몇 개의 단어들만을 열거해 놓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

한국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해본지가 10년은 족히 된 듯하여 솔직히 감조차 잡기 어렵다. 아, 최근에 김윤아의 노래는 들어본 적이 있다. 많이도 울었던 노래였지. 슬픈 노래를 듣고 한 소절씩 훔쳐볼까, 슬픈 시를 보고 한 구절씩 훔쳐볼까. 후훗.

경험에 의한 가사는 나올리 만무하다. 왜냐하면 사랑과 이별의 아픔 내지 슬픔의 감정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라고 그런 경험이 없었겠냐만 크게 기억할만한 뜨거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탓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 온 청춘을 바쳐 한사람만을 짝사랑했으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보면 순전히 청춘의 낭비였고 미저리같은 쓸데없는 집착일 뿐이었다. 그나마 6년만에 벗어나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덕분에 나는 6년의 세월동안 흔한 연애는 커녕 인간관계조차 똑바로 하질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 대학에서부터 직장까지 주변엔 남자들만 많았다. 털털함으로 애써 무장하여 그들을 대했어야 했고, 그들처럼 행동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여자로 보는 선후배들이 부담스러웠고, 늘 도망쳤고, 핑계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고, 결코 내가 잘나서임이 아닌 것도 알고 있으면서 괜스리 착각에 휩쓸리는 날이 많았다. 그로인해 누군가에겐 상처를 주기도 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큼이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인간관계 역시 실패였다. 짝사랑은 나에게 몹쓸 엉망의 기억만을 남겨주었다.

아이가 던져준 숙제는 온전히 연애를 못 해본 나에게 또다른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때 그이와 연애를 해보았다면 어땠을까. 돌이켜보면 다정한 사람도 많았는데 어린 시절엔 그 다정함을 유약함으로 치부하였으니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했을 뿐더러 인간에 대한 성찰과 예의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 덕분에 이토록 지독한 반성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며칠 동안은 추억속의 그이들을 줄기차게 소환해야 할것 같다. 한트럭은 될것 같다 머리를 쥐어짜며 반성문을 쓰는 기분으로 말이다.

더불어서 감성터지게 열심히 노래도 듣고 시도 읽으며 짜집기 실력발휘를 해야 할 것이다. 아, 내가 짝사랑을 한참 하던 시절엔 노래방에서 짝사랑에 관한 노래만 줄기차게 불렀던것 같다. 제목은 가물가물하지만 가사와 가락이 또렷한 이 노래는 무엇일까?

한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그대 영원히 내 모습 볼수 없나요
나를 바라보며 내게 손짓하며
언제나 사랑할텐데
사람들은 내게 말했었죠
왜 그토록 한곳만 보냐고
난 알수 없었죠 내 마음을
작은 인형처럼 그대만 향해 있는 나~

인형이 등장하는 공포영화가 뜬금포로 떠오르는건 감성이 메말랐다는 증거겠지. 하핫. 큰일이닷! 어떻게 이 감성으로 슬픈 노랫말을 쓰지? 헬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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