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끄적끄적 밀린 일기

생각날때마다 적어놓은 밀린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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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방학만 되면 왜 내가 살이 이리도 찌는지 허리 뒤춤이 두둑해졌다. 두 녀석은 식탁도 씹어 먹을 기세로 한시간에 한번씩 배가 고프다고 주방을 날락날락거리며 냉장고를 들쑤신다. 하루에 한끼는 각자 알아서 먹는 걸로 타협을 봤지만 요리를 못하는 엄마를 만난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름 이것저것해본다는게 언제나 낭패이다. 늘어가는건 뱃살과 허릿살, 줄어드는건 요리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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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전엔 한두번만 보면 외워졌는데, 안타깝다. 나의 노쇠한 뇌가 안타깝다. 아이들과 부루마블 게임을 하는데 큰 아이가 그랬다. 왜 이렇게 느리냐고. 돈을 세는 것도 느리고 주사위 말 움직이는 것도 느리고 심지어 계산도 느리다고 구박을 한다. 큰아이는 자기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도시를 소유하고 각각 도시의 통행가격도 다 안다고 뻐긴다. 쳇! 나도 청년 시절에 그랬다고! 부루마블의 여왕이었다고! 나도 슥 보면 다 기억했었다고! 그래도 오늘의 승자는 나다! 까불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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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바디컴뱃의 릴리즈가 나왔는데, 딱 내 스탈이다. 각 동작이 뭐랄까 좀 더 전사답다고 해야 할까. 딱딱 떨어지는 정자세, 좀 멋진걸! (인생도 이렇게 딱딱 떨어지게 살고 싶은데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앞으로 스탭 밟으며 빠른 쨉을 날릴때와 뒤로 스탭 밟으며 수비와 훅 동작을 연속으로 할때 음, 전사같아! 운동을 마치고 머리를 풀어해치고 나왔는데 거울속에는 넘나 칼스마 넘치는 여전사가 서 있다. 운동을 막 끝냈을 때 이뻐보이는 건 운동으로 영혼을 제대로 털었다는 증거다. 영혼 가출 상태로 자아도취에 빠져있을 때, 그때의 거울속에는 현재의 내가 아닌 이상 속의 내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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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살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예전에 한참 일본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실로 오랜만의 일본 영화다. 근래에 본 영화중에 가장 좋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촬영은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여 유리에 등장인물 두명의 상이 비치도록 했는데, 고레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 장면에 다 담겨있는 듯 했다.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봤지만 최신편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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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척 심란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고, 곤란한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걸까. 한국에 못 갈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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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하나씩 반려견 또는 반려묘를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갑자기 인연이라며 해피를 들여온 나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가는 모습을 보며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동안 아이들과 유기견 센터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난후에 입양을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얼마나 합리적인지 그동안 내가 몇마디 조언을 했던 것이 설마 이렇게 도움이 된건 아니겠지? 아이들이 원한다고, 외로워한다고 해서 생명을 들이지는 말라 했었다. 또 다른 책임감을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때 그때 입양을 고민해보라고. 물론 여러가지 이유를 들면서 입양을 부추기기도 했었다. 나때문은 아니겠지만 하나하나씩 준비해 가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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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변한건지, 요즘은 입에도 안대던 달달구리들이 너무나 땡긴다. 심지어 밥보다 더 먹고 싶다. 카페인 금단 증세인가? 덕분에 내 어깨엔 다시 새끼곰 한마리가 생기고 있다. 아가곰아! 그만 내려가줄래?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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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온가족에게 밀크티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둘러앉아 뜨거운 차를 마시는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유는 타서 늘러붙고, 맛도 밍밍하고, 뜨겁지도 않고 개선해야할 것들이 많다. 밀크티 맛나게 만드는 법을 공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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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드는 생각. 가혹한 현실에 대한 경험이 많다는건 과연 인생에 득이 될까 해가 될까. 단단하게 다져들다 못해 차돌멩이처럼 닳고 닳아 시류에 따라 굴러다녀도, 깨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그저 사람들의 발부리에 이리저리 채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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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도저히 2천자로 맞출 수가 없다. 못해도 1만자는 나올것 같다. 낭만에 대해 할말이 그렇게나 많은 것은 자칭 낭만주의자여서 일것이다. 아니, 낭만의 부조리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일것이다. 낭만이 우리 삶에 정작 필요하긴 한것인지, 누구나 느끼는 낭만이란 건 어떤 것이지,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사랑과 낭만이 밥 먹여준다고 믿고 싶다. 분량 줄이기가 불가능하다면 이번 이벤트는 패스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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