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끄적끄적 밀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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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때마다 적어 놓은 밀린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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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운동할때 글러브를 끼지 않았더니 금새 손에 굳은 살이 배겼다. 노랗고 딱딱한 녀석이 나를 보고 더 열심히 해라 했다. 녀석은 하루만에 하얀 껍질을 벗더니 제 노란 속살을 드러내 놓고 웃으며 말한다. 근육을 갖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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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운동해도 왜 몸이 변하지 않아? 응, 그건 그건 말이지. 음. 그건. 할말이 없다. 답은 하나다. 식단관리를 하지 않아서다. 두 아들은 방학 전부터 둘이 열심히 운동을 하더니 어깨가 넓어졌네, 이두가 커졌네, 허벅지가 굵어졌네, 식스팩이 생겼네, 난리다. 내가 봐도 아이들의 몸이 돌멩이처럼 단단해져가고 제법 성인스러워지는 티가 나는데, 나는 좀처럼 변화가 없는게 맞다. 식단이 답이란걸 알면서도 못하는건 순전히 식탐때문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사실은 의지 문제이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점점 건강한 돼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어느날 삘이 꽂히면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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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투덜 말도 많은 녀석때문에 힘들다. 누굴 닮은 거지? 나, 나인가? 뭘 해도 즐겁게 하지 않는 녀석이 안스럽고 짠하다. 나는 싫어하는 일도 닥치면 그냥 재밌게 하려고 하는데 녀석은 그게 참 안되나보다. 마음 다지기가 나에게는 겨우 손바닥 뒤집기 정도로 쉬운 일인데 녀석에게는 참 어려운 일인가 보다. 몇번 이야기하다가 관뒀다. 결론은 간단했다. 니 인생이지, 내 인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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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대학생과 함께 이틀을 보냈다. 참 싱그러운 친구다. 예쁘고, 귀엽고, 센스 넘치는 친구라 함께 일하는 내내 웃음이 나게 했다. 문득문득 내게서 찾아지는 엄마 미소. 이쁘네! 아이고,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의 나도 파릇한 향기가 나곤 했었는데, 부럽다. 하지만 괜찮다. 나도 가져본 적이 있었고 누릴만큼 충분히 누렸으니 추억만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 추억은 평생 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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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돌덩이를 가득 담은 듯하다. 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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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냐만 눈동자를 살펴보고 숨소리를 들어보면 보이는 부분이 있다. 아주 작고 미묘한 변화라도 웬만하면 감지해낼 수 있다. 물론 사람을 직접 대면해야만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온라인에서는 글귀에서 풍겨나는 느낌을 잘 살펴봐야하는데, 집중력만 보장된다면 이것 또한 그리 어렵지는 않다. 평상심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글은 판이하게 다른 듯하다. 마음이 불편할때는 글에서도 숨고르기가 제대로 나타나질 않기 때문이다. 적절한 호흡과 쉬어가기가 없는 글은 불안감을 동반하고 금세 변덕과도 가까운 감정을 글 곳곳에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어제의 나의 것이 그랬다. 숨가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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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분 좋은 일은 역시 하얀 봉투를 건네받을 때다. 이 맛에 자꾸 일을 한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남편 구두도 하나 사주고, 애들 옷도 하나씩 사주고, 나머지는 수고한 나를 위해 써야지. 며칠 내에 바닥이 드러나겠지만 봉투는 그 자체로도 너무 좋다. 서랍안에 봉투를 넣으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애썼다. 제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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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씻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병맥주 뚜껑 따는 법을 아이한테 가르쳐주고 있을때 문득 오늘이 남편 생일이라는 걸 알았다. 급하게 카톡을 보냈다. 아이쿠야! 오늘 아침 나는 감기기운이 몰려와서 일 나가기전 좀 더 누울 요량으로 아침을 부탁했고, 아이들 아침식사도 샌드위치로 준비해 놓고간 그였다. 퇴근한 그는 삐져있는건지 유독 말을 잘 안 했고, 난 지금 그 옆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 말을 더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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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반반으로 등분된것 같다. 원래 둘 이상으로 신경쓰는 일이 생기게 되면 좀 예민하게 구는 터라 절반의 가슴이 다른 절반의 가슴때문에 심히 힘들다. 그 두개가 서로 투닥투닥거리는지 심장의 절구질이 멈추지 않는다. 잠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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