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PXsociety의 거꾸로 읽는 세상_#3] 누가 놀이를 모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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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말했던가, "노동은 신성하다"고. 하지만 또 누군가 이런 얘길 했던 것 같다. 진짜 신성한 건 "놀이"라고.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헝클어진 세상을 근거로 신을 부정한다. 신이 있다면 세상을 이대로 놔두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신성을 오해하는지 깨닫는다. 신이 성스러운 이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소(신)는 어떠한 노동에도 기여하지 않음으로써 신성을 획득한다. 귀족이 되기 위한 조건은 땀 흘리지 않는 것이었다.

혹자는 그럼 창세기에 신이 한 행동은 뭐냐고 물을 것이다.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좀 더 멀리 봤으면 한다. 신은 어둠 속에서 깨어나 세상을 만들었고 관리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 손을 떼고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방관했다. 이유가 뭘까?

창조는 놀이지만 관리는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축제의 6일째, 놀이가 모두 끝났다는 걸 깨달은 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놀이 공원을 떠났다. 그의 실수는 놀이 공원을 떠나면서 불을 끄지 않았다는 것. 그렇게 이 세계는 방치됐다.

무료해진 신이 다시 놀이공원을 찾은 적이 꼭 두 번 있다. 한 번은 줄기차게 비를 뿌려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었고 또 한 번은 자기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건 노동이 아니냐고? 천만에. 재미로 오줌을 싸 개미굴을 무너뜨리는 아이를 떠올려 보자. 도미노를 쌓을 때 보다 무너뜨릴 때 손뼉을 치며 황홀해하는 아이를 떠올려보자. 창조가 놀이라면, 파괴는 더 큰 놀이다.

이 무책임한 신을 모욕하고 싶다면 부정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건 그저 도피일 뿐 현실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두 가지다. 그를 죽이거나 우리 모두 신이 되거나. 나는 신을 죽이는 법은 알지 못하지만 신이 되는 법은 알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힘 없고 비굴하고 미천한 인간들아 놀자. 노는 것만이 우리를 신으로 만들지니, 놀고 놀고 또 놀아,

우리 스스로 우리를 구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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