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맥락이 사진을 잡아먹는다.

때론 맥락이 사진을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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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지 못해 후회한 적은 많았지만 사진을 찍었기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여태껏 부끄럼 없는 사진만 찍어왔다고 생각하니까.

사진을 정보의 시각적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보통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상승할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기록에만 의지해야 하는 순간들은 분명 찾아오니까.

여기서 맥락이 개입한다.

평범한 청년의 옛 졸업사진이 20년 후엔 대통령의 청년 시절 모습을 담은 사진이 될 수도 있고 며칠 전 생각없이 찍은 친구의 사진이 그가 죽기 전 찍힌 마지막 순간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을 찍었든 맥락이 시시각각 개입해 사진의 가치와 의미는 바뀌곤 한다.

내가 찍은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몇 개월에 한 번씩 외장하드를 연결하거나 필름 보관함을 열어 그간 찍었던 사진들을 돌이켜보곤 한다.

사진은 그대로다. 사진 파일엔 변함이 없다. 데이터는 정직하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현실은 변화한다.

이 세상에 더는 없는 사람과 지금은 헤어진 커플부터 시작해, 죄를 저질러 커뮤니티에서 쫓겨난 사람들, 얽히고 섥힌 문제가 터져 해체된 조직과 서로 싸우게 된 과거의 동료들, 누군가의 잘못과 무책임으로 해체된 밴드까지.

사람이 살다보면 인간관계는 변하기 마련이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하고 그대로 보내야만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런 현재진행형의 맥락들이 과거에 찍어둔 사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게 때론 두렵다.

2년 전에 봤더라면 그리움, 기쁨, 멋짐의 감정을 자아냈을 사진들이 지금은 분노, 슬픔, 우울함의 감정을 자아내게끔 한다.

여기서 미워해야 할 것은 사진이 아닌 사람인 것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나는 사진을 삭제하고픈 충동을 떨쳐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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